[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 제약사들이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의 제형 다변화 범위를 경구제에서 주사제로 넓히고 있다. 외래 처방 중심의 정제와 구강붕해정에 이어 입원 및 응급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맥주사(IV) 제형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는 모습이다.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중국 파트너사인 리브존제약은 최근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성분명 자스타프라잔)' 주사제형의 현지 임상 3상 시험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온코닉테라퓨틱스는 리브존제약에 개발 마일스톤 100만 달러(한화 약 13억 원)를 청구했다.
이번 3상은 소화성궤양 출혈 환자를 대상으로 자큐보 주사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지난 2023년 리브존제약과 총 1억 2750만 달러 규모의 중화권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경구제와 주사제 권리를 함께 이전한 바 있다.
리브존제약은 지난해 8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용 경구제에 대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며, 올해 5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요법 3상 진입에 이어 주사제 3상까지 개시하며 적응증과 제형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온코닉테라퓨틱스가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물 없이 복용하는 '자큐보구강붕해정'의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이어 올해 5월에는 구강붕해정을 물에 현탁해 코에서 위까지 연결된 관으로 투여하는 비위관 투여 방식의 약동학 및 안전성 비교 평가 1상 변경승인을 신청하는 등 투여 경로 다각화를 병행 중이다.
HK이노엔은 중국 파트너사인 뤄신제약을 통해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 주사제형인 'LX22001'의 임상 2상 시험을 최근 마쳤다. HK이노엔은 지난 2015년 뤄신제약에 케이캡 경구제 기술을 수출한 데 이어 2021년 주사제형 기술을 추가로 이전했다.
뤄신제약은 최근 중국 현지에서 진행한 LX22001의 임상 2상 시험 피험자 추적관찰을 종료하고 임상시험결과보고서(CSR) 작성을 마쳤다. 회사 측에 따르면, LX22001은 해당 임상시험에서 주요 평가지표를 충족했다.
LX22001은 소화성궤양 출혈 환자의 내시경 지혈술 후 재출혈 위험 감소와 중증 환자의 스트레스성 궤양 출혈 예방 등을 적응증으로 개발되고 있다. 뤄신제약은 확보한 2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후속 임상 3상 시험 진입 시점을 검토하고 있다.
HK이노엔은 국내에서 케이캡정에 이어 2022년 '케이캡구강붕해정'을 출시해 경구제 라인업을 구축한 상태다. 중국 시장에서 주사제형 개발이 완료되면 경구제와 주사제를 모두 보유한 제품군을 갖추게 된다.
대웅제약은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의 정맥주사 제형인 'DWP14012주'의 국내 임상시험을 자체적으로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은 지난 2020년 식약처로부터 DWP14012주의 1상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아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을 탐색했다.
이후 2024년 5월 식약처로부터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DWP14012주 정맥 투여 후 안전성, 내약성, 약동학 및 약력학적 특성을 평가하기 위한 신규 1상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임상은 무작위 배정, 이중 눈가림, 위약 대조, 단회 및 반복 투여 방식으로 설계됐다.
대웅제약 역시 정제 외에 복용 편의성을 개선한 구강붕해정 개발과 관련 특허 출원을 진행하며 제형 확장을 추진해 왔다. 여기에 정맥주사 제형 개발을 통해 원내 처방 시장까지 파이프라인 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응급·중환자 미충족 수요 정조준 … 'PPI 아성' 주사제 시장 공략
국산 P-CAB 개발사들이 일제히 주사제 개발에 뛰어든 것은 경구제만으로는 진입하기 어려운 병원 입원 및 응급 환자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내외 위식도역류질환 외래 처방 시장에서 P-CAB은 빠른 약효 발현 시간과 야간 산 분비 억제 효과 등을 앞세워 기존 PPI 제제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급성 상부 위장관 출혈이나 소화성궤양 출혈, 중환자실 입원 환자 등 경구 복용이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에스오메프라졸, 판토프라졸 등 PPI 계열 주사제가 표준 치료제로 쓰인다.
P-CAB은 위산에 의한 활성화 과정 없이 프로톤 펌프에 직접 결합해 투여 첫날부터 최대 위산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적 특성이 있다. 이러한 기전이 정맥주사 제형에 적용되면 응급 출혈 상황에서 PPI 주사제보다 신속하게 위 내 pH를 상승시켜 지혈 유지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 상용화된 P-CAB 주사제가 없는 만큼, 개발에 먼저 성공할 경우 기존 PPI 주사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처방 연속성 확보 측면에서도 주사제 라인업 구축은 중요하다. 중증 위장관 출혈이나 수술 등으로 입원한 환자는 초기에 정맥주사로 위산분비억제제를 투여받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하거나 일반 병동으로 옮길 때 동일 성분의 경구제로 전환하는 스위칭 요법을 주로 적용받는다.
특정 제약사가 주사제와 경구제를 모두 보유하고 있으면 입원 시 시작된 주사제 처방이 퇴원 후 외래 경구제나 구강붕해정 처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주사제 라인업이 없으면 입원 단계에서 PPI 주사제를 사용한 환자가 퇴원 시에도 동일 계열인 PPI 경구제를 처방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주사제 확보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아이큐비아(IQVIA) 기준 약 4~6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국 소화기 치료제 시장은 입원 환자 대상의 주사제 처방 비중이 높은 편이다.
중국 현지 병원들은 급성기 질환 치료 시 정맥주사 선호도가 높아 경구제 단독 품목보다 주사제를 동반한 라인업이 병원 약사위원회(DC) 통과와 시장 점유율 확대에 유리하다. HK이노엔과 온코닉테라퓨틱스가 중국 파트너사를 통해 현지에서 주사제 임상을 우선적으로 진척시키는 것도 이러한 시장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국내 P-CAB 시장은 후발 주자들의 가세와 제네릭 개발 시도로 인해 외래 경구제 영역의 경쟁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정제와 구강붕해정으로 1차 제형 경쟁을 마친 국내 제약사들이 미개척 영역인 주사제 시장을 선점해 '완전한 PPI 대체'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