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꽃의 노동

하진형

사진=하진형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기술자였던 묵자(墨子)는 사람을 노동적 동물이라 했다. ‘노동하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쓰는 모습을 연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동만큼 신성한 것도 드물다. 노동만큼 많은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땀 흘리고 난 후 얻는 보람이나 기쁨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장맛비가 잠시 멈출 때 예초기로 풀을 베면 그 효율이 엄청나다. 먼지도 나지 않고 물기가 풀잎에 적당히 무게감을 주어 칼날도 시원하게 돌아가고 깨끗이 베어진다. 잡초가 햇볕을 받아 하늘거려 칼날을 비켜가는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잡초를 다 벤 뒤의 깨끗함을 보면 내 몸이 다 시원하다. 또 진딧물이 둘러싼 고추와 토마토에 농약을 뿌려주면 그들도 온몸을 털며 개운해 한다.

 

조용히 노동을 생각한다. 순자(荀子)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면 가장 약한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에 비하면 소나 염소 등 동물들은 태어나면서 바로 서서 걷고 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종족을 보존하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최소 몇 년의 보살핌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면서 사람은 어울려 살고 그로 인해 강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것은 숙명이고 필연이다. 노동은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땀을 흘리고 나서 마침의 기쁨을 얻지만 나의 몸은 생성 소멸은 반복하고, 꽃도 쉼 없는 노동을 통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몸 세포는 생겨나면 7년 간 생성소멸을 반복한다고 한다. 7년 전의 내 몸을 이룬 세포는 쉼 없는 노동을 하다가 소멸되고 지금은 다른 세포가 자신의 역할(노동)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는 다르다는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어쩌면 길어야 30년 지나면 큰 세포덩이를 안고 죽을 것이다. 또다른 사물에게 나의 역할을 넘기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죽음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은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노동도 같이 하면 훨씬 생산성도 오르고 힘도 덜 든다. 예전 조상들의 노동요(勞動謠)도 그런 면이 있다. 어릴 적 모내기를 하는 들녘에서 보면 어른들은 농삿일을 하면서 늘 노래를 불렀다. 논을 갈 때도 부르고 씨앗 뿌리기, 모내기, 타작을 할 대도 불렀다. ‘기계화 영농인 요즘과 달리 모든 것을 오로지 사람과 소가 도와서 하던 예전에 즐겁게 일하기 위한 나름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물론 요즘은 많은 환경이 바뀌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한정된 삶(시간)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것들은 수없이 많다. 농사일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운전 나들이를 할 때는 낯선 분야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 부족한 나를 채워가는 즐거움도 또한 노동을 통해서 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은가? 하며 반성과 겸손을 챙기는 계기도 되어 고마운 것이다.

초보 농사꾼의 손톱 밑은 늘 까맣게 되기가 일쑤다. 처음엔 지저분하게 보여 부끄럽기도 하고 타인에게 더럽게 보일까 봐 숨기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손톱 밑의 때도 노동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그것은 노동의 표시이고 흔적이다. 병균이 있다고 섣불리 생각하면 안 된다. 사실 따져보면 휴대폰 만지고 돈을 만지는 손보다 흙을 만지는 손이 환경적, 생물학적으로도 훨씬 깨끗하다.

 

창밖엔 기름기를 잔뜩 머금은 벼가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작은 농장의 감나무는 감이 커가는 무게에 가지가 처지고, 아직도 꽃을 피우는 포도나무엔 송이가 굵어진다. 또 엊그제 진 백합꽃은 씨주머니를 사리고 있다. 그뿐인가? 느티나무는 거의 완벽한(사실 세상에 완벽함이란 없다)형체로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노동을 즐겁게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직업(노동)엔 귀천(貴賤)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곳곳에 귀천의 틈새가 보인다. 가오(폼 잡는 것)가 그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약함을 감추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괭이를 든 농부, 메스를 든 의사, 의사봉을 든 정치인, 리어카를 끄는 폐지 줍는 노인을 생각한다. 모두들 고유하고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도 숱한 노동이 있다. 땅속 물감공장의 노동이 없고서야 어찌 저런 형형색색의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7.01 12:14 수정 2022.07.0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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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