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기식 ‘뻥튀기 광고’ 판치는데 심의는 낮잠?

[藥인가 食인가...線넘는 건기식] ②과대광고 사라지지 않는 이유

네이버쇼핑에 집중력개선영양제를 검색하면 건강기능식품을 ‘약’으로 광고하거나 기능성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들이 노출된다. [사진=네이버쇼핑 캡처]
한때 서울 강남에서는 ‘포스파티딜세린’ 성분의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 청소년들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칼을 빼 들었다. ‘수험생 영양제’, ‘기억력 개선’, ‘집중력 강화’ 등과 같은 효능·효과를 내세운 광고 게시물을 점검하고 부당광고를 적발했다.
하지만 관련 광고는 여전히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당장 네이버쇼핑에 ‘집중력 향상 영양제’만 검색하면 포스파티딜세린 성분의 건기식을 ‘성인 ADHD 집중력 장애 개선 영양제’로 광고하는 사례가 등장한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와 관련 있는 제품처럼 표기한 것이다. 은행잎추출물 성분의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면서 ‘약’이라고 표기한 사례도 보인다. 식약처가 점검할 때만 반짝 없어지는 듯하더니 그새 부당광고들이 온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파티딜세린의 기능성 허가 내용은 ‘노화로 인해 저하된 인지력 개선, 자외선에 의한 피부손상으로부터 피부 건강 유지·피부보습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다. 집중력 향상 등의 내용은 해당하지 않는다. 은행잎추출물의 기능성 허가 내용은 ‘기억력 개선·혈행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다. 역시나 집중력, 인지력과는 관계가 없으며 약은 더더욱 아니다.

건기식 과대광고 소비자신고 1년새 2배 이상 늘어

건기식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상에서 원재료나 성분의 효능효과를 과장해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게 하는 허위·과대광고가 판치고 있다. 최근 식품안전정보원이 발표한 ‘2023 불량식품 소비자신고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건기식 관련 소비자신고 1798건 중 과대광고 신고는 1459건으로 전체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 702건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과대광고가 소비자 피로도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SNS나 유튜브를 중심으로 과대광고 사례가 증가하자 일각에서는 심의기구가 사전에 광고를 잘 거르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백종헌 의원실에 제출한 식품 관련 허위과장 광고 적발 현황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관련 허위 과장광고는 최근 5년간 총 2만3983건으로 집계됐다. 적발 건수는 2020년 5009건, 2021년 3605건, 2022년 4069건, 지난해 6월까지 1864건으로 나타났다. 2021년 감소하는 듯 하더니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모양새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식품 등에 관하여 표시 또는 광고하려는 자는 자율심의기구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건기식 담당 기구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와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2개가 있다. 신문, 인쇄물, 홈쇼핑 뿐만 아니라 SNS와 유튜브 등에 올리는 광고도 사전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1~2주 가량 걸리는 데다가 심의 건수 중 절반 이상이 수정 후 다시 확인을 받아야 하는 ‘수정적합’ 판정을 받는 등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발생하다 보니 사전 심의를 받지 않는 곳들도 있다. 수정적합 건수를 줄이기 위한 사전 교육과 심의기간 단축 등이 요구된다.
사후관리에 대한 감시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SNS나 유튜브 등의 고도화하는 광고수법을 식약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채널에서는 일정 연령대나 지역으로 표적을 설정하고, 이들 대상으로만 노출되는 형태의 광고 진행이 가능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광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마케팅 등 광고 수법이 더 치밀해졌다”며 “타깃 광고는 감시하는 사람에게조차 노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다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고주도 헷갈리는 느슨한 기준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유튜브나 SNS 등은 표현의 자유 및 자율성이 보장되는 개인의 정보 공유 공간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부당광고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누리 소통망(SNS)의 온라인 광고 점검 등 모니터링을 지속 실시하고, 영업자 등에게 교육·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심의기관 관리감독 역할 구분도 애매하다. 건강기능식품의 표시·광고 자율심의기구 운영기준에 따르면 자율심의위원회의 기능은 ▲건강기능식품 표시․광고 자율심의 규정 수립에 관한 업무 ▲건강기능식품 표시․광고 자율심의 등에 관한 업무 ▲건강기능식품의 표시․광고 모니터링 관리 등에 관한 업무 등이다. 
 
하지만 막상 이미 노출된 광고의 위반 여부에 대해 자율심의기관에 문의하면 해당 기관에서는 사전심의를 담당한다고 답한다. 건강기능식품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자율심의기구로서 사전심의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며 “사후 심의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 주체는 식약처”라고 말했다. 그런데 식약처에 문의하면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를 통해 사전심의 내용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로 공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아울러 부당 광고 표시에 대한 기준과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과대광고로 걸릴 만한 단어가 뭔지 구분이 어렵다는 평가다. 한 건기식 제조업자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업자들끼리 사용하면 안 되는 키워드들을 공유하고, 판례를 보면서 공부한다”며 “심지어 과대광고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마다 허용하는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고 들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부경대 법대 김두진 교수가 발간한 ‘건강기능식품 표시⋅광고 법제의 현황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식품으로 분류하지만, 광고표시 허용 범위는 한국보다 엄격하다.

“식약처, 부당 표시⋅광고 기준 명확히 설정해야”

EU에서는 광고·표시에 대해 ‘가능한 최고 기준에 대한 과학적 평가 후’에만 기능성 주장을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하고 있다. 미국도 1990년 영양표시·교육법이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승인돼 해당 영양성분이 정의돼 있는 때에만 ‘영양성분 주장’을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건강기능식품이 따로 분류되는데, 광고에 대해 의약품과 같이 엄격한 사전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또한 광고에는 ‘약물을 대체할 수 없다’는 문구까지 명시해야 한다.
반면 ‘국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질병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으면 부당 광고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질병 또는 질병군(疾病群)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내용의 표시·광고, 둘째 질병 또는 질병군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표시·광고, 셋째 질병의 특징적인 징후 또는 증상에 예방·치료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표시·광고, 넷째 질병 및 그 징후 또는 증상과 관련된 제품명, 학술자료, 사진 등을 활용해 질병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표시·광고 등은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중 건강기능식품에 기능성을 인정받은 사항을 표시·광고하는 때에는 첫째와 넷째 항목은 부당광고에서 제외된다. 기능성을 인정받은 건기식에 한해 질병 또는 질병군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광고는 할 수 있지만, 특징적인 징후 또는 증상에 예방 효과가 있다고 광고를 하는 것은 부당사례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이 얼마나 엄격히 구별될 수 있는 지 의문이 든다는 게 김두진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코메디닷컴에 “국내 법은 다른 나라 법에 비해 느슨한 부분이 있다”며 “기업이 증명되지 않은 기능성을 주장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이런 정보만 믿고 소비할 수 있으므로 식약처가 부당한 표시⋅광고 기준을 더욱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식품의 기능성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기구에서 광고를 심의하고, 전문가의 비율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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