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학 태두’ 노관택 전 서울대병원장 별세

노관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1960, 70년대 중이염 치료의 최고 명의로 이름을 떨치며 청각학의 토대를 닦고 우리나라 병원들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노관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고인은 “의사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 진료, 연구 및 교육, 사회봉사의 세 길 중 하나라도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을 평생 철저히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의료계의 어른이었다. 학문, 의료, 봉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지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학자였다.

고인은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났으며 수업료 때문에 해군사관학교에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서울대 의대를 선택했다. 대학 2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나 부산에서 천막 수업을 들으며 의학과 의술을 익혔다.

노 명예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의 이비인후과 교수로 근무하며 대한민국 청각학의 태두로서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고인은 해군 군의관 복무시절, 청각학(Audiology)의 발상지로 알려진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병원에 유학한 뒤 국내 처음으로 청각학 강의를 펼쳤으며 서울대병원에 난청진료실을 개설했다. 대한청각학회의 창립 때에는 발기인 대표로 산파 역할을 수행했다. 라이온스 히어링 센터(Lions Hearing Center)를 설립해 무의촌 진료와 청력개선 수술, 보청기 보급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청각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로 한국라이온스클럽 무궁화 사자대상, 중외박애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또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 아시아오세아니아이비인후과학회 연합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이비인후과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의사는 진료실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믿었으며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및 학술담당 부회장, 서울시립영등포병원(현 보라매병원) 원장, 서울대병원장, 한림대의료원장, 대한병원협회 회장, 국제병원연맹(IHF) 등을 역임하며 국내 병원 및 의료의 발전을 이끌었다.

고인은 2005년 경기도립의료원의 박윤형 초대 원장이 “요즘 젊은 의사들이 지방 의료원 근무를 기피해서 걱정”이라고 한숨쉬자 파주병원 근무를 자청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파주병원까지 가서 근무했으며 진료가 없는 날에는 연희동의 집 마당에서 국화를 돌보며 심신을 달랬다.

고인은 제자들에게 도덕성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런 철학을 담은 《인간 존중의 의료서비스》를 출간했다. 제례에 관한 책을 직접 지어 친지들에게 돌릴 정도로 예법에도 박식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하며 디지털 문화에도 뒤처지지 않았던 ‘젊은 어른’이기도 했다. 지난해 초엔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동문과 일부 지인들에게 ‘포노 사피엔스’와 관련한 새해 메시지를 보내면서 “나같은 꼰대도 달라지는 인류의 새로운 문명, 이 좋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떠나야지, 그냥 가긴 억울하지 않습니까!”라면서 디지털 문화에 뒤처지지 말라고 권했다.

고인은 소탈하고 부드러운 학자였다. 아들이 유방암 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노동영 강남차병원 원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전 서울대병원 암병원장·강남센터원장, 전 서울대 연구부총장)으로 부자 명의로도 유명하다. 아들의 소탈한 리더십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노동영 원장은 “아버지가 남을 헐뜯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동기로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석학 이현재 박사가 사돈이다.

유족은 부인 최윤보 씨와 동영·윤정·경주·동주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7일 오전 5시, 장지는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02-2072-2020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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