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선생님,

- 차 승 진 -
 

점심시간 10분 전부터 선택의 추첨함에 제비뽑기한다
주머니를 뒤지는 몇 푼어치의 지폐
어릴 적 여름 시냇가엔 가재와 민물고기가
흐르는 물줄기에 살랑살랑 꼬리 춤을 추었고
동생과 나는 향긋한 동백이파리를 한 움큼 따서 우리들의 지폐를 만들었던,
그때 그 기억을 불러오는 김밥집에서 
함께한 지인과 한 줄의 김밥에 노란 단무지를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목 안으로 넘긴다

둘이서 먹는 점심값이 6,000원을 나누면
절반 값으로 배를 채우는 흡족한 시간
목메이지 말라고 뜨끈한 어묵 국물 한 공기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분주히 김밥을 써는 아주머니를
상냥한 어투로 부르는 소리
선생님, 국물 조금만 더 주시겠어요

한 줄의 김밥을 앞에 두고, 
나는 가지런히 자른 두 번째 토막부터 나란히 나란히 접시를 비워 나갔다
선생님, 그 한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글을 쓰는 행위처럼
오랫동안 끄적거려온 잡문들이 꽃밭에서
날아가는 나비처럼 바라만 봐야 하는,
그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대하여 나는 생각해 본다

지나간 날의 허투루 버려졌던 말의 씨앗들이
어디에서 싹을 틔우는지
고운 말의 씨앗들이 자라나는 한 줄의 김밥을 먹는 풍성한 들판에서
말 한마디에 싹트는 배려의 열매
선풍기의 날개를 한 아름 품고 있는
원통형 구조물처럼 서로의 포근한 집을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의
고단한 마음을 흔들어 주는 출렁다리를 한들한들 건너가는, 
김밥 한 줄의, 시 한 줄을 읽어보는

저작권자 © 위클리 김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