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이것이 ‘국민뮤지컬’이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이것이 ‘국민뮤지컬’이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12.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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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이하 ‘백사’)은 대한민국 쥬크박스 뮤지컬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기존의 쥬크박스 뮤지컬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어떻게 구별되고, 무엇이 돋보였나? 

첫째, 선곡이 ‘신의 한수’였다. 한국의 근현대가요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근현대가요 연구자에게 시대별 대표가요의 선곡을 의뢰해도 대략 비슷해질 것 같다. 한국가요 100년의 역사를 망라했다. 레코드산업이 시작된 초기, 조선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 노래 두 곡을 초반에 배치했다. 사의 찬미(1926년 취입, 외국곡, 윤심덕 노래)와 낙화유수(1927년 발표, 1929년 취입, 김서정 작곡, 이정숙 노래)를 통해서, ‘이 시대’ 사람에게 ‘그 시대’ 노래를 통해서, ‘한 시대’를 경험하게 한다. 작품의 후반에선,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따뜻하게 전달한다. ‘그 중에 그대를 만나’(2014년, 이선희 노래)와 ‘걱정말아요 그대’(2004년, 전인권 노래, 2015년, 이적 노래)에선, 관객도 함께 떼창을 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한다. 

둘째, 작가와 연출이 잘 만났다. 시대 상황 인물. 셋의 연결도 좋은데, 여기에 노래까지 더 하다니! 시대를 볼 줄 알고, 압축을 할 줄 안다. 이우미(작가)와 고선웅(각색 & 연출)의 안목과 능력에 탄복한다. 한국근현대사 100년의 중요한 사실을 ‘4대’의 삶을 통해서 전개한다. 한국사 책이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다룰만한 것들을, 노래를 매개로 해서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고선웅의 스토리 압축력은 이미 ‘베르테르’가 증명한다. 다이제스트를 통해서도 놓치는 것이 없었는데, ‘백사’에선 마치 그가 유능한 작가, 현명한 연출을 넘었다. 고선웅의 ‘장면의 연결’은 마치 ‘감정의 편집’과도 같았다. 영화와 다큐의 ‘노련한 편집’이 편집이 마치 무대에서 재현되는 인상을 받는다. 

‘백사’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음악’이다. 선곡도 좋지만, 편곡이 더 좋다. 김혜성 음악감독은 원곡의 정서를 캐치하고 있었다. 그간 오직 원곡의 멜로디만 따서, 제멋대로 변형시킨 뮤지컬 넘버를 듣는 괴로움은 아는가? 원곡이 유행하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에겐, 이건 불쾌한 고문이 되기도 했다. ‘백사’처럼 원곡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고, 기존의 편곡을 ‘존중’하면서 만든 뮤지컬을 보니, 기존의 쥬크박스뮤지컬에 대해서도 용서하고픈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뀐다. 

‘백사’는 어쿠스틱은 어쿠스틱으로, 일렉트릭은 일렉트릭으로 잘 살려낸다. ‘맨처음 고백’에선, 송창식을 송창식 대로, ‘님은 먼곳에’에서 신중현은 신중현대로 살린다. 비슷한 시기이지만, 정서적인 간극이 있는 노래 두곡을 스토리 안에 연결하는 재기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웨딩 케이크’(외국곡, 트윈 폴리오 노래)와 ‘당신은 모르실 거야’ (길옥윤 작곡, 혜은이 노래)를 연결하면서, 그 시대의 남녀의 사랑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백사’를 어떻게 최고라고 칭하지 않을까 싶은 팬심이 절로 생겨났다. 

고선웅은 신파극(통속극)에 대한 애정 또는 집착이 강하다. ‘홍도’처럼 신파극을 신파극처럼 만들기도 하지만, ‘푸르른 날에’처럼 전혀 신파극이 될 수 없는 이야기도, ‘신파극’의 구조 속에서 전개하며 감동을 준다. 뮤지컬 ‘백사’는 통속극의 범주에 드는데, 그간의 그의 통속극에서 과잉되는 ‘시츄에이션 코메디’와 ‘슬랩스틱 코메디’와 같은 부분이 많이 정리되고 절제되었다. ‘백사’에는 ‘본질적 서사와 동떨어진 찰나적 위트’는 최소한 없었다. 내겐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내겐 원치 않는 그것들이 떠나간 자리에, 조금씩 감동과 여운의 깊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백사’의 모든 배우가 다 적역이다. 특히 ‘쥬크박스뮤지컬’의 뮤지컬을 표방한 작품에서, 노래를 제대로 들려준 세 배우를 특별히 거명하고 싶다. 전재현, 장재웅, 신진경이다. 뮤지컬 ‘백사’은 ‘4대(代) 공감 노래방’이다. 거기서 부른 노래를 뮤지컬로 해서 다시 부르고 싶고, 뮤지컬에서 들었던 노래를 노래방에서 한번 부르고 싶게 만든다. 한국의 근현대사의 ‘아릿한 순간’을 한국가요의 ‘중요한 맥락’으로 풀어낸 ‘백만송이의 사랑’이 참 고맙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최초 ‘국민뮤지컬’이다. 2022년, 방방곡곡을 돌면서 공연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