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1.1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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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말러는 자기의 정체성을 요약했다.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고,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 속에서는 유태인이다.” 어릴 때 ‘제2의 슈베르트’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슈베르트의 ‘방랑자’보다 더 치명적인 ‘디아스포라’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열네 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어린 동생들의 잇따른 죽음에 상처받았고, 이 경험을 음악에 담았다. 교향곡 2번 <부활>이 ‘죽음의 축제’로, 5번 C#단조는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한 건 그에게 자연스런 일이었다. 새 · 바람 · 시냇물 등 그가 사랑한 자연의 이미지, 4살 때 들은 군악대의 드럼과 트럼펫 소리, 유태인 사회의 노래와 여흥 등 어릴 적 체험은 그의 교향곡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말러 교향곡은 부담없이 즐기기에는 너무 길다. 한 곡이 80분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3번 D단조의 경우 1악장만 40분쯤 된다. 오케스트라 규모도 매우 크다. 해머와 쇠방울 등 낯선 타악기가 등장하여 포르티시모에서는 베토벤 교향곡에 비해 음량이 3배에 달하는 반면, 솔로 악기들이 고요히 앙상블을 이루는 대목도 나와서 강약대비도 심하다. 8번 <천인> 연주에는 1,000명이 필요하다니 이게 정상인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교향곡에서 죽음, 부활, 우주 어쩌고 하는 추상적 얘기를 하다니, 과대망상증 환자로 오해되기 딱 좋은 음악가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그의 교향곡을 제대로 듣겠다는 만용을 부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 이 방대한 말러의 교향곡을 어느 곡부터 듣는 게 좋을까?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10번, 9번, 8번의 순서로 한곡씩 악보를 익혔다고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이 이렇게 역순으로 말러를 듣는 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짧은 1번 <거인>과 4번 G장조를 먼저 듣는 게 수월하지 않을까? 

4번 G장조는 <천상의 삶>이라 불리기도 한다. 1901년, 말러는 결혼을 앞둔 알마에게 이 곡의 1악장 주제를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 알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곡이 하이든과 뭐가 달라요?” 말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요.” 하이든의 교향곡을 별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면 이 교향곡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말러 교향곡 중 가장 부드럽고 유순하며 연주시간도 비교적 짧고(55분!) 오케스트라 규모도 작은 편이다.   

이 교향곡이 하이든 교향곡과 다르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일단, 말러의 가곡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과 대조해서 들어야 이 교향곡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상의 삶>은 배고픈 어린이와 어머니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된 노래다. “(1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옥수수를 딴단다. (2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타작을 한단다. (3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빵을 굽는단다. (4절) 빵이 구워졌을 때 아이는 죽어서 관에 누워 있었다.”  

말러 <지상의 삶>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우리네 ‘지상의 삶’은 늘 이런 것일까? 굶주린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억울한 고문 피해자와 조작간첩들…. 진실을 밝혀달라고 애원하지만 국가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지상의 삶’이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면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서 ‘천상의 삶’을 꿈꾸는 게 인지상정일까? 말러는 <지상의 삶>과 대비되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을 작곡했고, 이 노래가 교향곡 G단조의 피날레가 됐다. 어린이로 돌아가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곡은 어린이가 본 천상의 행복을 노래한다.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니 세속의 것은 필요치 않네. 만물은 평온하고 우리는 천사의 삶을 누리네. 우리가 뛰며 춤추고 노래하니 하늘에서 베드로가 지켜보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