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전봉준

김진환 기자 / 기사승인 : 2021-03-28 11: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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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사거리 영풍빌딩 전옥서 터에 세워진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보신각 사거리 영풍빌딩 전옥서 터에 세워진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뉴스써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이 전래 민요는 조선말에 동학 농민 운동을 주도했던 녹두 장군 전봉준에 관한 것이다. 전봉준은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아서 녹두라고 불리었다.


전래 민요 속 녹두꽃은 전봉준을 가리키는 말이다. 파랑새는 일본군, 청포 장수는 조선의 백성들을 상징한다.


녹두꽃이 떨어진 것처럼 전봉준과 동학 농민 운동이 일본군에 의해 실패하자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뜻이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나라 안팎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나라 밖에서는 서양 열강들과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안으로는 백성들에 대한 지방의 수령들과 양반들의 수탈과 횡포가 극심했다


그래서 최제우가 조선 왕조를 부정하고 백성을 위해 만든 동학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조선 왕조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신분제를 부정하고 백성을 현혹하는 종교라며 배척하지만,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은 더욱 퍼졌다.


전봉준도 조선의 몰락 양반으로 반봉건·반외세를 주장하는 동학을 믿게 되고, 지방관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전라도 지방의 동학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동학군을 이끌고 백성을 위해 봉기한다.


하지만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은 체포되고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동학 농민 운동의 사상은 이후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동학 농민 운동의 반봉건 사상은 이후 조선의 근대화 개혁에 반영되어 신분 제도 변화에 기여하고, 반외세 사상은 조선 멸망 이후 의병운동과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 2018년 4월 24일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에 의해 종로2가 보신각 사거리 영풍빌딩 전옥서 터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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