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녀 시조시인은 2013년 늦깎이로 등단 후 시조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묵묵히 외길을 걷고 있다. [사진=이승민 기자]
이선녀 시조시인은 2013년 늦깎이로 등단 후 시조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묵묵히 외길을 걷고 있다. [사진=이승민 기자]

 

[뉴시안= 이승민 기자]“앞으로 순수한 민족 문학의 얼이 담긴 시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노력이 (사)한국시조협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듯이 시조를 알리고자 함은 저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 보듬기에 온 열정을 다하는 이선녀(52) 시조시인.

2013년 늦깎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2010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가곡의 가사가 바로 시조”라며 시조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묵묵히 외길을 걷고 있다.

“일본에는 17글자로 된 하이쿠라는 정형시가 널리 알려져 있죠. 한국은 3장 6구 12소절의 43, 45글자로 된 정형시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말살돼 버렸죠”

그는 "시조는 한국 고유의 리듬과 정서를 담은 한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의 표현 도구"라고 강조한다. 음악적인 운율을 지녔고, 그런 가운데서도 절제의 아름다움을 즐겼던 민족의 전통을 잇기 위해 시조가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

“남들은 시조가 형식이 있어 고루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형식 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는 게 시조의 묘미지요”

시조는 순수한 우리 민족의 문학이다. 그의 말대로 계승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완주군 위봉사 인근 위봉폭포를 지나는 길에 이선녀 시조시인이기부한 다수의 시조 작품들이 위봉폭포를 시향(詩香)으로 감싸고 있다. [사진=이선녀]
완주군 위봉사 인근 위봉폭포를 지나는 길에 이선녀 시조시인이기부한 다수의 시조 작품들이 위봉폭포를 시향(詩香)으로 감싸고 있다. [사진=이선녀]

 

얼려진 감 하나를 입안에 넣어보니

마음이 물들어서 노을로 번져가네

발그레 상기되어서 설레기도 하여라

 

전북 완주군 위봉사 인근 위봉폭포를 지나는 길엔 언제나 선녀를 만날 수 있다. 그가 기부한 다수의 시조 작품들이 위봉폭포를 시향(詩香)으로 감싸고 있어서다. 그가 쓴 정감 어린 시조들이 탐방객들의 감성을 일깨운다.

그의 특이한 이름인 ‘선녀’는 아버지가 지어줬다.

그의 어머니는 15살 때 시집와 31살에 첫 아이를 낳고 7년 뒤에야 그녀를 낳았다. 그의 아빠는 뒤늦게 딸을 만난 기쁨으로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다”며 딸 이름을 ‘선녀’라 지었다고 한다.

“시조의 긴 생명력의 비결은 한국인의 호흡과 기질에 잘 맞기 때문일 겁니다. 시조가 널리 알려져 일기처럼 가까이서 일상 생활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선녀 시조시인. [사진=이선녀]
이선녀 시조시인. [사진=이선녀]

그의 시조는 2013년 월간 한국문단으로 등단해 낭만 시조 공모전 대상을 받을 정도로 깊이가 있다. 현재 (사)한국시조협회 이사로 문화유산 추진위원회 간사 등 집행부 일을 맡고 있다. (사)한국시조협회는 2년 전 시조를 시, 수필, 소설처럼 문학의 한 장르로 만들어 관련법의 국회 통과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인들 동인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문학치료학도 깊이 있게 공부했다. 9년 전엔 혼자 발품 팔아서 ‘전주문학제’라는 큰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야생초가 기다리던 햇빛을 받고 영롱하게 빛날 때, 더 이상 하찮은 풀이 아닌 풀의 본디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제 삶의 과정에서 노력할 뿐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조뿐 아니라 시 소설 수필 다양한 장르도 공부하며 좀 더 체계적인 배움의 길을 갈 계획입니다.”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쉴 틈이 없었던 그는 시조를 알리기 위해 시조 강의도 하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요즘 서울에 살면서 대학원에 입학해 다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자아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감성 에듀테이너’이기도 하다.

“국문학도인 제자가 시조를 배우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며 기뻐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보람을 느꼈죠.”

그가 직접보고 느낀 체험 위주로 써 내려간 수백 편의 시조는 4년 전 ‘시조 꽃이 피었습니다’로 엮어져 세상 밖으로 나와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는 우리 시조 대중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이처럼 묵묵히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더 그녀를 빛나게 한다.

이선녀 시인의 ‘지독한’ 시조사랑은 세상과 소통하는 ‘행복한 통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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