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AP/뉴시스] 작년 4월 2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길거리 시장에서 한 여성이 식료품을 사고 있다.
[자카르타=AP/뉴시스] 작년 4월 2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길거리 시장에서 한 여성이 식료품을 사고 있다.

식량비, 6년 만에 최고치 기록

‘富國’ 영·미에서도 기아 우려

가격 올리거나 크기 줄이거나

신흥국 비상·자급자족 대책도

[천지일보=이솜 기자] 인도네시아에서는 두부 가격이 작년 12월에 비해 30% 올랐다. 브라질에서는 검은콩 가격을 1월에 비해 54% 인상했다. 러시아에서는 소비자들이 설탕 값을 1년 전보다 61% 더 내고 있다.

최근 선물시장에선 주요 식량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기후가 급변해 작황이 타격을 받은 데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운송 등 공급 차질이 커진 탓이다. 작물, 기름 등 모든 원자재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식량 가격은 6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폭등, 전염병보다 오래갈 것”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은 세계 식량 가격이 ‘슈퍼사이클(supercycle, 20년 이상 장기적인 가격상승 추세)’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1월 세계 곡물가격지수가 115.7로 6년 만에 최고치를 냈다고 발표했다.

연초 수단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레바논과 튀니지에서는 식량 확보에 대한 불안감이 분쟁의 원인이 돼 시위가 재발했다. 인도에서는 농부들이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에 반기를 들었으며 아랍에미리트도 일부 식료품에 대한 가격 제한을 고려하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켈렌 헨드릭스는 “가격 폭등은 단지 지역사회와 가계에 많은 어려움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그것에 대해 뭔가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이런 추세는 전염병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품 가격 폭등에 따른 영향은 불균형적이다. 서구 부유한 나라에서는 소비자가 단지 제품 브랜드를 바꾸면 해결될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최빈국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일터에 보내는 것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유행병이 세계 경제에 대혼란을 일으키면서 심지어 단기적인 가격 급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기아와 영양실조에 대한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트러스셀트러스트는 대유행 첫 6개월 동안 어린이들에게 하루 2600개의 음식 소포를 나눠줬다. 미국 최대 기아 구제 기관인 ‘피딩 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320만명이 추가로 식량 불안으로 몰렸는데, 이는 2018년보다 35% 증가한 수준이다.

닐슨IQ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년 동안 3% 가까이 물가가 올랐다. 전체 인플레율의 대략 두 배에 달한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극빈층은 이미 소득의 36%를 식비로 지출하고 있다.

북미 소매 부문을 이끌고 있는 존 누디는 블룸버그에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며 “애완동물 사료를 제조하는 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유명 식품 기업인 코나그라 브랜드 최고 경영자 션 코놀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며 비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름, 돼지고기, 달걀, 판지 등 포장 재료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런 증가세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소매상들은 상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에 다량 구매나 특별 판촉 행사를 줄일 수도 있다. 닐슨IQ는 작년 미국에서 판촉 행사로 판매된 식료품들의 수가 20%포인트 감소했다고 밝혔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제품 크기가 줄어드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도 발생할 수 있다.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5년간 미국 대두 선물 가격 (출처: tradingeconomics)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5년간 미국 대두 선물 가격 (출처: tradingeconomics)

◆신흥국 직격타… 대응 제각각

물가가 빠르게 변하는 신흥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당장 이 문제에 직면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은 최근 1년 동안 인플레이션보다 식료품 가격이 빠르게 상승해 신흥 시장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나이지리아에서도 식품물가가 물가상승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1월에는 12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나이지리아 평균 가정은 예산의 50% 이상을 식비로 쓴다.

인도네시아 서쪽 자바에 사는 라하유(64)는 블룸버그에 최근 몇 주 동안 고추 가격이 킬로그램 당 7만 루피아(약 5500원)로 두 배 이상 올랐다고 지적하며 “지난주와 같은 가격으로 더 적은 템페(콩을 발효시켜 만든 인도네시아 음식)와 두부를 구입했다. 앞으로 섭취량을 더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압력이 커지면서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국내 식품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특정 식료품의 가격을 고정하고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세계 1위의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해외 판매를 억제하고 국내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고안된 관세와 할당량을 부과했다.

터키는 수년 동안 두 자릿수 식품 인플레이션과 씨름해왔지만, 리라 가치의 폭락과 함께 식량비가 핵심 지지기반을 강타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관련이 커지고 있다.

일부 부유한 국가에서는 정부가 가격 통제보다는 자급자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랑스는 콩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단백 작물 생산량을 끌어올릴 계획이며 싱가포르는 최근 국내 식량 능력 증진을 추진하면서 실험실에서 만든 육류 판매를 가장 먼저 승인한 나라가 됐다.

광범위한 경기부양책을 찾고 있는 곳도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주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전염병이 가난한 지역사회를 어떻게 긴장시켰는지 보여주는 한 예로서 식량 불안을 지적했고, 동시에 경제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한 또 다른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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