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모습.
신사참배 모습.

제2회 고신포럼 ‘전환기 한국교회와 고신의 역할’ 개최
“한국 교계, 고신 교단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갖고 있어
‘신사참배’ 배교한 장로교 준엄한 역사적 비판 받아야”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한국 교계와 일부 교회사학자 및 신학자들이 ‘신사참배(神社參拜)’의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자랑스러운 역사만 영웅적으로 확대 평가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사참배는 일제강점기 때 보수 장로교의 주도하에 국권을 침탈한 일본 천황신에게 절하는 등 한국교회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2018년 12월 설립된 고신포럼(대표회장 김현규 목사)은 1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왜 고신인가? 전환기의 한국교회와 고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포럼을 진행했다. 고신파(高紳派)는 일본의 태양신을 ‘우상’이라고 판단, 참배하지 않고 장로교에서 분리돼 만들어진 교단이다.

교계 언론에 따르면 이날 포럼에서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는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최 박사는 고신파에 대해 “고신교회의 고귀한 유산은 순교정신과 투쟁정신, 생활순결”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고신파는 종종 변종 바이러스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에 피해를 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교계와 일부 교회사학자 및 신학자들이 고신 교단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역사왜곡, 사실호도가 가장 심각한 한국교회사 대목은 고신 교단 출범에 관한 기술(記述)”이라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제1차 분열에 대한 대부분의 기술은 사실을 완전히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세시대 가톨릭교회 성자들에 대한 실증적 연구 없이 성스럽게만 말하는 풍토인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를 예로 들어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자랑스러운 역사만 영웅적으로 확대 기술 평가한다”며 “고신교회를 설립한 출옥성도들이 자기의 의를 과시하면서 독선적으로 교회를 분열시켜 독자적 교회를 설립했고, 고신파가 교회의 외형적 단일성을 파괴하고 교회분열의 죄를 범한 것으로 기술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화려한 친일 전력을 가진 인사들은 광복 후 예장 총회(1946) 재조직을 주도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선봉장 한상동 목사와 경남 출옥성도들도 총회와 경남노회 재조직에 참여했다”며 “고신교회 초기 지도자들이 우상숭배 전력자들과 함께 교회 재건에 동참한 것은 심대한 교회론적 함의(implication)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친일파 인사들은 출옥성도들과 고려신학교의 등장이 자신들의 입지가 난감해지자 그들의 노회를 총회에서 제거했다. 친일파 교권주의자들은 장로회 규칙과 질서를 위반하고 교회 분열을 책동한 것”이라며 “고신교회는 독립적 교회 조직 의사가 없었지만, 총회의 교권적 횡포와 부당한 결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독자적인 길을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신파 장로인 이만열 박사가 고신교회 설립이 부당하고 한국 장로교회 제1차 분열의 책임이 고신교회에 있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는 “이만열 박사는 민족주의 역사가임에도, 친일 반민족 행각과 교회를 분열시킨 범죄자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과소평가한다. 그는 왜 배교자, 민족 배신자들의 자성과 통절한 참회고백을 촉구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박사의 고신교회 출범과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한국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참회고백과 참회권징의 의무와 책임소재를 흐려놓는다”며 “우상숭배와 배교, 백귀난행에는 면죄부를 주고 준엄한 역사적 비판을 받아야 할 사안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체 개신교인 40만명 중 70%인 28만명의 성도들이 속해 있는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비롯한 천주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성결교 등 대부분의 교단 교파는 신사참배에 결의했으며 한국 기독교 교단들의 친일 행적은 해방 전까지 지속됐다.

해방 후 신사참배는 한국교회의 주요한 이슈가 됐고, 원래 한 몸이던 장로교단은 40년 만에 분열됐다. 일제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했던 대부분 한국교회와 달리 당시 장로교의 친일행적에 반기를 들고 수감됐던 목회자들은 해방 후 자신들만의 교단을 만들었다. 신사참배에 반대한 고신파는 자신들을 한국교회 정통으로 자처하며 분리하게 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