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뭇가지 지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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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후문으로 통하는 동(棟) 사잇길의 널찍한 쉼터는 놀라운 디자인이다. 두 가호가 너끈히 들어겠다. 땅값이 널뛰지 않던 20년 전에 지었다니 가능했을까. 아파트에 쉼을 위한 이만한 공간은 흔치 않다. 건축에 쉼을 접목해 가성비를 높였다면, 건설 쪽도 잇속을 살렸지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을 성싶다.

앉아 쉬게 원통형 돌들을 운치 있게 흩어 놓았고, 남쪽엔 시골집 마당처럼 돌멩이로 올망졸망 쌓아 화단을 만들었다. 수많은 돌의 축적이나 다들 손을 타 시멘트 흔적이 없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구조물에 자연을 불러들인 의중이 엿보여 미소로 번지는 감탄 감이다.

동 사이를 터놓은 넉넉한 쉼의 자리라 마음 끌리기도 하거니와, 화단이 있어 곧잘 와 앉곤 한다. 머리 위로 늙은 왕벚나무 세 그루가 지붕처럼 서 있는데, 이곳에 앉아 듣는 새소리는 공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연전, 이사 오며 이 쉼터가 나를 붙들어 앉힌 소소한 감동이 있다. 명시를 새긴 대리석 시비를 여덟 개나 놓았잖은가. 미당의 <푸르른 날은〉, 김춘수의 <꽃〉, 황동규의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아파트에 시비라니. 뜻밖의 조합에 한동안 멈춰 섰다. 쉼터 바닥으로 시가 소리 내 흐르는 것 같았다. 읍내를 떠나 낯선 도심에 온 내게 쉼터는 정든 이웃의 임의로움으로 다가왔다.

화단에는 꽃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 있다. 산수국, 해란, 천리향. 자란, 목단, 홍·백작약, 팔손이, 털머위…. 가꾸는 손이 있는 것 같잖은데, 잡풀 하나 없이 말끔하다.

어느 날, 이곳을 서성이는 낯선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걷던 길에 마주친 무심한 눈길이었다. 이튿날도 그 할머니가 화단을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었는데, 푸른 잎 그대로인 웬 대나뭇가지를 들고 있었으나 그냥 지나쳤었다. 할머니는 어제 스쳤던 면식에 내게 눈인사를 보내왔다. 얼핏 보아 밭매다 나온 시골 할머니 같은 허름한 차림이지만, 유난히 웃음이 따뜻하고 눈이 맑아 보였다.

뒷날, 아파트 둘레를 거닐며 무심코 화단으로 눈을 보내다 깜짝 놀랐다. 가만 보니, 어제 그 할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푸른 잎이 달린 대나뭇가지가 작약 줄기를 받치고 있잖은가. 바람 쐬러 나왔다 화단 주변을 둘러보는 거겠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어제의 그 대나뭇가지가 지지대로 세워 있어 분명했다.

화단이 달라져 있었다. 꽃나무들을 하나하나 막대기 지지대로 받치고 끈으로 묶어 놓았다. 쓰러지던 꽃나무 가지와 줄기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는 것 같다. 진작에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제법 키를 키우며 봉곳이 망울이 들어앉아 힘겹던 백작약도 대나뭇가지에 묶여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잖은가. 지지대가 흰 구름 한 조각 받아든 것 같다. 어제 할머니가 들고 있던 그 대나뭇가지….

지지대로 세워 놓은 꽃나무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모습들이다. 당장 허리 펴고 직립(直立)해 걸어 나올 것 같은 기세들이다.

할머니는 어떤 분일까. 화단에 공력을 들였으니 아파트 주민이리라. 구순 가까워 보였던 어르신의, 내가 하노라 내세우지 않은 노역에 말을 잃는다. 한 몸 주체하기도 어려울 텐데 어디 쉬운 일인가.

오월 들어 벙근 목단과 작약이 볕 아래 곱다. 한데 할머니가 영 보이질 않는다. 만나면 꽃을 바라보며 수인사라도 나눠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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