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의 힘 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여당은 단독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고, 야당은 현 정부 압박용 또는 내년 대선용으로 활용하며 적극 저지 공세에 나선 형국이다.

김기현 대표.
김기현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2일 “가짜 뉴스 근절이 아니라 정권 말 각종 권력형 비리 보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라며 “독재 정권에서 하던 못된 짓과 판박이”라고 거칠게 일갈했다. 

16년 전 참여정부 시절, 언론중재법 도입 당시를 떠오르게 한다. 그 때도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합심하여 심하게 저항했다. 상황을 그대로 재연시켜 놓은 것 같아 씁쓸하게 한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권력 핵심 인사들은 가짜 뉴스라는 말로 자신들의 죄를 덮고 국민을 기만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권력자 견제 위축”, “언론 자유 침해” 반대 이유 

김기현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 2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 출신 이상직 의원(무소속·전주을)을 언급하며 “500억원대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알고 보니 그의 주장이야말로 진짜 가짜 뉴스였다”며 언론중재법을 이상직 의원과 연관 지었다. 

신뢰도가 바닥권인 국내 언론 환경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정략적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앞뒤 전후를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언론 개혁’에는 동의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야당과 보수언론은 물론 언론단체들에서도 뜨겁게 제기되고 있다. 

“권력자 견제가 위축된다”, “언론 자유가 침해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징벌적 배상’에 대한 부담이 컸던지 특히 보수언론들은 적극 야당편에서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보수언론들은 “여당은 늦어도 오는 8월말 있을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합심하여 저지할 태세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선두에 서서 총괄 지휘를 하는 양태다.

조선일보, "이상직 언론봉쇄법 통과되면 한국은 언론자유국 아니다?" 

조선일보 7월 30일 사설(홈페이지 캡쳐)
조선일보 7월 30일 사설(홈페이지 캡쳐)

7월 30일 자 사설에서 극명하게 태도를 밝혔다. 그런데 사설 제목을 하필 ‘이상직 언론봉쇄법’ 통과되면 한국은 언론자유국 아니다‘라고 달았다. 

“민주당이 언론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물릴 수 있게 한 언론중재법을 국회 소위에서 강행 처리했다”는 사설은 “사전에 법안 내용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표결에 붙였다”면서 “이스타항공 비리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주도한 법을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밀어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이런 저런 반대 이유를 설명하면서 “특히 피해액 산정을 언론사의 매출액과 연동한 것은 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정권 전체가 비판적 보도에 대해 줄줄이 징벌적 손배를 제기하면 언론사로선 감당하기 힘든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언론의 입을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또 이상직 의원을 거론했다. 사설은 “이 법 도입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사람은 이상직 의원”이라며 “이 의원은 지난 2월 500억원대 횡령·배임과 대량 해고 등에 대한 비판 보도가 쏟아지자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있는 보호 장치’라며 언론중재법 처리를 주장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사설은 “그는 문재인 대통령 딸의 해외 이주를 도운 덕에 여당 공천을 받고 1년이나 수사와 구속을 피했다”며 “이런 사람이 자기 보호용으로 추진한 법을 민주당은 언론 개혁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상직 의원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 500억원대의 피해를 입힌 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 중이다. 지역민들의 비난이 들끓는 가운데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하필 그런 자와 연관지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폄훼하며 반대 논리로 포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언론중재법=이상직법?, 잘못 해석

이상직 의원.
이상직 의원.

사실 언론중재법은 처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다. 여기에 '징벌적 배상'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줄곧 제기돼 왔다.

특히 그 중심 이유에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거대 보수언론·족벌언론·재벌언론들이 늘 있어 왔다. 언론 자유를 핑계 삼아 권력에 기대어 부역하며 부를 축적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왜곡·훼손하는 등의 잘못을 저질러 온 행위에 대한 징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오늘에 이른 배경이 크다. 

'지나침이 너무 과하다'는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요원하자 언론중재법에 급기야 부끄러운 메스(징벌적 배상)가 가해지기까지 그 배경을 모르는 언론들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모르는 척 하면서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이 법안은 이상직 의원이 주장한 개정안이 아니다. 그와는 상관이 없이 지난 6월 24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된 개정안이다. 

5배까지 징벌적 배상, 누구 때문인지?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 보도에 최대 5배까지의 징벌적 배상이 잘못되고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타당할지라도 그러한 부끄럽고 과도한 법을 정치권이 만들도록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언론)들이 누구인지 먼저 되묻고 싶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언론중재법 도입 시에도 가장 반발이 거셌던 언론사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정도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입법 사례를 찾기도 어려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법이 언론자유에 대한 과잉 억압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소원 결과 언론중재법은 대부분 조항이 합헌으로 결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년이 흐른 지금 변호사 조력 없이도 반론·정정 보도가 가능하며 언론중재부의 직권 조정에 의해 기사 삭제도 가능하다. 일반 소송과 다르게 조정 신청에 특별한 비용이 필요없다. 

다시 최근으로 거슬러 올라와 6년 전인 2015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도입 시에도 언론인이 대상에 포함된데 대해 가장 거세게 저항하며 반발했던 언론이 어디였던가? 

'언론자유 침해'라며 보수언론들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부작용보다 오히려 사이비 언론, 권력·금력형 언론인 척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워 할 줄 알고 반성과 성찰부터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언론의 편향과 왜곡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아가 김영삼·김대중 정권 시절에 시도했다가 거센 반발에 좌초됐던 재벌 언론사들의 세무조사도 이번 기회에 정비하여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의 기형적인 (독)과점 현상, 재벌 언론·언론 권력의 구조적 병폐가 낳은 취약한 언론 풍토와 시스템은 일제 강점기부터 오랜 시절 축적돼 왔다. 이를 바로 잡고 개선할 책임은 언론사 또는 언론인들 스스로에게 있다. 

언론 개혁을 정치권에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언론인들은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에 앞서 거품을 물며 반대만 하기보다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중심에 조선일보가 앞장서 준다면 더 바랄나위 없겠지만 불가능한 현실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무조건 반대하며 정치·이념적 도구로 활용하며 예단하기에 앞서 냉철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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