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년 만에 새 간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지난 정부 5년간 '패싱' 논란에 휩싸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로 개명하고 돌아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전경련이 설립될 당시 사용했던 명칭이다.

전경련 측은 사명 변경 취지에 대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전경련이 그간의 설움을 딛고 재계 맏형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 혁신 외친 전경련…재계 맏형 복귀까지 여전히 험로 예상
- 환골탈태 개혁안 내 놔...4대 그룹 복귀 타진, 재가입은 '글쎄'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이 회원사에서 탈퇴했다. 이후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대신해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의가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는 부활을 시도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더니 지난 18일에는 전경련 위상 회복 차원의 혁신안을 제시하면서 환골탈태를 예고해 이목이 쏠린다.

- 과거 영광 재현할까 

이날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경련이 정부 관계에 방점을 두고 회장·사무국 중심으로 운영됐던 과거의 역할과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번 혁신안에는 정치권력과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내부 윤리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이 포함됐다.

전경련은 ▲정치·행정 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에 진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 상생 선도 ▲혁신주도 경제 및 일자리 창출 선도 등 윤리 헌장을 제정해 향후 총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경유착 차단을 위해 윤리경영 위원회 설치를 중심으로 한 내부 검토 시스템도 구축한다.

인터넷 포털이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을 상대로 회장단을 확대할지 주목된다. 네이버, 하이브 등으로 회원사의 저변을 넓힐 수 있어서다.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난 2014년 SM과 YG가 전경련에 가입했지만, 현재는 YG만 회원으로 남은 상태다.

김 대행은 "과거 경제 발전 과정에서 국가 주도 성장이 이뤄지면서 전경련은 정부와의 협력 체계를 형성하고 정부의 정책 의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커지고 시민사회 혁신 역량이 높아지면서 국가 주도보다는 시민사회가 더 중요해졌고, 시민사회와 나라 걱정을 해야 했는데 정부와의 관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게 지난 K스포츠·미르재단 사태로 이어지면서 큰 위기에 봉착하는 상황을 낳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도 전경련은 국내외 경제인 행사를 개최하면서 위상을 되찾고 있다. 전경련은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제34차 한미 재계 회의를 공동 개최했다. 이 행사는 양국 주요 기업인과 경제단체 등 VIP급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에 앞서 개최된 한일 재계 회의에는 4대 그룹 대기업 사장단들(이인용 삼성전자 사장과 공영운 현대차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이용욱 SK머티리얼즈 사장)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호응을 이끌었다.

- 4대 그룹 재가입도 '오리무중'

이처럼 점차 위상을 되찾아 가고 있는 전경련이지만 이번 개혁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대한상의, 경총 등 다른 경제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대체재로 가능하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4대 총수가 돌아올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4대 그룹은 전경련 재가입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담감이 높은 상태다.

여기에 오는 8월 말로 예정된 김병준 직무대행의 임기가 마감되면 정식 후임 회장을 선임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2011년부터 내리 여섯 번이나 연임을 통해 12년간 전경련을 이끌어 온 허창수 회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하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처한 형국이다.

문제는 현재로선 차기 회장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등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이들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젊은 리더가 전경련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선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전경련이 주최하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행사에 1호 총수로 참석하기도 했다.

세대교체의 연장선에서 외부 전문가 영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 중심의 이익단체에서 탈피해 경제 씽크탱크로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립 당시의 이름으로 돌아가 새 출발 하겠다는 전경련의 변신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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