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 피해 '심각'...法의 처벌은 솜방망이 

[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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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박재성 기자] ‘산업스파이’문제로 각 국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삼성·LG·SK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기술이 유출됐다는 기사가 잊을만하면 나오고 있다. 철통 보안 속에 지켜질 것만 같은 ‘첨단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면서 기업 경쟁력 악화는 물론 국고 손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처벌은 미미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 산업스파이 대다수는 ‘내부인’...회사 앙심 품고 계획범죄 많아
- “스파이의 기술 유출 더이상 좌시하면 안 돼” 법 강화 목소리 커

# 반도체 회사에 재직 중이던 A씨는 2018년 임원승진에 탈락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2019년 6월 중국 업체와 반도체 웨이퍼 연마제 제조사업을 동업하기로 했다. 이후 회사 내부망에 접속, 반도체 웨이퍼 연마 공정도 등 회사 기밀자료를 열람하고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자료를 유출했다. 유출 자료에는 영업비밀은 물론 ‘국가핵심기술’도 포함돼있었다. 이들로 인한 피해 규모는 자그마치 1000억 원이다.

# S사 연구원 3명은 S사가 100억 원 가량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을 유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해당 기술 관련 장비업체의 차명 지분을 취득하고 동업 관계를 맺어 이 기술을 유출하려고 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이를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 정보를 넘겨 유출은 막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산업기밀 유출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검찰청이 발표한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건수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총 112건이었고 국가핵심기술 유출사건도 36건이 포함됐다. 그중 국내 핵심 산업인 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에서 피해 건수가 가장 높았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더 컸다.

지난해 11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산업기술유출 사범 특별단속’을 벌여 9개월 동안 총 101건, 317명이 입건됐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85건)이 대기업 (16건)보다 많았다. 유출 주체는 외부인(9건)보다는 임직원 등 내부인에 의한 유출(92건)이 많았다. 그리고 국내 기업 간 기술유출(89건)이 국외 기술유출(12건)에 비해 많았다.

단속된 건 중에서는 영업비밀 유출 사건이 74.2%(75건)로 가장 많았다. 업무상 배임은 14.8%(15건), 산업기술 유출은 10.9%(11건)로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도 6건도 있었다.

[제공=경찰청]
[제공=경찰청]

- 국내 처벌 규정 强, 실제 처벌은 弱

그렇다면 국내 ‘산업스파이’처벌 규정은 어떨까. 관련 법률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위반행위로 인한 재산상 이득액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5억 원 초과 시 재산상 이득 액의 2배 또는 10배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한다. 외국으로 유출하는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는 법 규정 그 자체로는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미미하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검찰에 접수된 기술유출사범은 총 4804명이며 이중 4001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또한 실제 양형 기준과 처벌규정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법원이 실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침해행위’를 적용해 판결하고 있다. 해외로 기술 유출을 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은 기본 1년에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제시하며, 가중 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이 6년에 그친다.

[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외국과 비교해봐도 ‘벌금’에 있어서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미국에서는 관련법에 따라 개인은 15년 이하 징역 또는 50만 달러(원화 6억 원) 이하 벌금, 법인은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일본도 관련법에 따라 ‘산업 스파이’ 행위에 대한 벌금을 최고 10억 엔(약 94억 원)을 부과하고 있다. 

B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인신을 구속한다는 것이 법원으로서 부담스럽기 때문에 강한 처벌규정에도 비교적 완화된 기준으로 양형을 부과한다”며 “산업스파이의 경우 일종의 ‘재산범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형의 강도가 강하지 않고 벌금 수준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 C씨는 “하급심에서는 선례에 구속되는 한계가 존재하기에 죄질의 심각성과 양형기준 간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산업스파이 방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일각에서는 산업스파이 방지를 위해 우선 법 개정을 통해 산업스파이 입증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존 법안에서는 국가핵심기술 또는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고의적인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 처벌됐다. 하지만 산업스파이 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있어 개정된 법안에서는 ‘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때도 법률상 금지행위로 규정했다.

산업보안전문가 D씨는 본지에 “사전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스파이의 경우 법적인 처벌도 중요하지만 민·관 모두가 유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우선 “‘차단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며 “기업의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차단하고 사내 핵심기술 취급 인력을 최소화하는 등 자체 보안에 만전을 기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유출이 의심되는 경우 정보·수사기관에 지체하지 말고 알려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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