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의 한이었던 강비를 향한 방원의 복수가 시작된다. 세자 방석은 폐위되고 경복궁 영추문에서 살해된다. 세자의 형인 방번은 도망가다 양화진 나루에서 참살 당한다.

그러나 방원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강비의 영혼의 집인 정릉에 까지 이른다.
방원의 실세에 밀려난 태조는 통한의 나날을 보내다가 방원이 왕이 된지 8년 만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오매불망하던 사랑하는 왕후 강비 곁으로 간다.

방원에게 마지막 복수의 기회는 왔다. 그는 도성 안에 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마침내 정릉을 헐어 버린다. 강비 신덕왕후의 유해는 살한리(沙乙閑)골짜기로 옮겨져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다. 그곳이 지금의 정릉이다. 

방원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정릉을 파묘하면서 남겨진 각종 석물들을 가져다가 광통교 다리를 만드는 석재로 쓴다. 때마침 홍수가 나 청계천이 넘치게 되고 흙과 나무로 만든 광통교가 유실되자 이 같은 일을 서슴없이 한다.
“신덕왕후는 비록 나의 어머니 줄에 앉는 사람이지만 어릴 적부터 나를 기른 일 없다.”

방원이 강비에 대한 증오를 완만히 표현한 말이다.
그는 비록 계모이기는 하나 어머니인 신덕왕후의 능을 파헤치고 그 돌을 가져다가 다리를 만들어 뭇 백성의 발 뿌리에 밟히도록 한다.

이런 연유로 광통교는 유례가 없는 특수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왕비 능에 있던 사대석과 병풍석의 돌은 주로 교각과 교대(橋臺)로 사용되었다. 남쪽인 어느 은행 본점 쪽에 있는 교대는 병풍석 중 신장석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정교한 조각은 드물게 보는 문화재급이다.

“이성계의 순애보도 감격스럽지만 방원의 집념이야말로 알아주어야겠는데...”
장미영으로부터 광통교의 내력을 듣고 김인세는 충격과 함께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광통교에 대한 자료도 모으고 실지 답사도 했다.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태조가 정릉을 지을 때 사대석이나 병풍석, 상설석 등에 교묘하게 보물을 감추어 두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야사에서 캐냈다.

만약 아무도 찾지 못하게 보물을 함께 묻어 두었다면 그것이 지금 광교 밑에 있는 교각이나 교대 같은 곳에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폭 15센티, 길이 13미터의 작지 않은 국보급 석교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의 끈질긴 주장이 일보 매스컴에 의해 보도되자 마침내 독지가가 나타났다.
“젊은 사람이 참으로 놀라운 집념을 가졌군요. 감동했소. 마침 내가 큰돈은 아니지만 좀 가진 게 있으니 두 젊은이를 돕겠소.”

인두 산업의 김갑중 회장이라는 사람이 김인세를 찾아왔다. 돈 가진 사람답지 않게 야위고 왜소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을 가진 50대 장년이었다.
“회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보람 된 일은 꼭 성공할 것입니다.”
김인세는 김 회장 앞에서 정말 눈물을 보일 뻔 했다.
김인세의 광통교 복원 연구소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갑중 회장이 보내준 사람들이 합세했다.

서울특별시 등 당국자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몇 달간 노력한 보람이 있어 마침내 공식적으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조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시설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교대석 뒤에는 이성계의 명문이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받침돌이나 벽면 석물 속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인세는 광통교의 옛날 사진을 보면서 그 회사에서 파견 해준 석공 기술자들과 함께 당국자에게 흥분 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들은 마침내 광통교 밑 청계천에 천막을 치고 돌 속을 관통하는 엑스레이 촬영 허가 뿐 아니라 절개 공사 허가를 받아냈다. 
첫날 청계천 다리 밑으로 들어간 사람은 김인세, 장미영 그리고 김 회장과 진복성 등 네 사람이었다.

악취를 풍기며 썩은 청계천 물이 교각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간데라 불빛 앞에 나타난 다리의 모습은 적어도 김인세에게는 감격적이었다.
“와, 광통교 너 였구나!”
“광통교에서 조선으로 가는 거야.”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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