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무의 길] 나를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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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무의 길] 나를 위로하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1.10.25 23:42
  • 호수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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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교당 강동현 교무
강동현<br>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br>
강동현
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

교당을 나설 때였다. 근래 느껴보지 못한 바람이 살결을 스친다.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가을이다. 연한 커피 빛깔의 초목들이 은은한 향을 풍긴다. 눈을 감고 그 향기에 취해본다. 천지의 고요한 속사임이 들린다. 질주하던 마음이 멈춘다. 흩날리며 사라지는 한 방울의 눈물이 천지를 품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지님이 건네는 위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가을 소식은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농부가 봄에 씨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나니 이것이 인과의 원칙이라, 어찌 농사에만 한한 일이리오” 마음 소식을 살피는 말씀이다. 스스로 묻는다. ‘올 한 해 마음농사는 잘 되었는가?’ 그 질문을 생각하며 가을이란 단어를 생각해본다.

순우리말인 가을이란 단어는 시린 듯 곱다. 왜 이런 느낌을 갖게 될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농부는 곡식이나 열매를 끊어내어야 한다. 가을의 어원은 ‘끊다’의 고어인 ‘갓다’에서 비롯한다. 그 후 ‘갓을’이 ‘가슬’로 변하여 마침내 ‘가을’이 됐다. 가을은 끊어내는 아픔과 채워지는 기쁨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시린 듯 곱다. 완벽한 ‘진공묘유’의 조화이다.

가을과 같은 만남이 있다. 매주 토요일 10시에 만나는 장병들이다. 부대와 교당의 거리가 멀다. 이를 극복하고자 찾아가는 종교행사를 한다. 행사 제목은 원불교 토크콘서트 ‘나를 위로하다’이다. 행사 순서는 간단하다. ‘명상, 문답감정, 간식나눔’으로 진행된다. 시간은 대략 20~30분 정도 소요된다.

명상을 통해 진공으로 체를 잡고 문답감정으로 묘유를 다룬다. 그리고 간식은 ‘1+1’로 주며 나눔을 실천하라고 독려한다. 나눔은 조화의 구현이다. 진공묘유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계절로 비유하면 사계절을 전부 품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가을 빛깔로 많이 나온다. 장병들의 군 생활은 시린 듯 곱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환경 및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은 시린 일이다. 그러나 세계평화와 조국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참 곱다. 장병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은 가을 소식이며,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으로 위로하는 일은 마음 소식이다. 그래서 가을과 같은 만남이 된다. 실제 적지 않은 장병들이 “교무님, 위로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반대이다. 오히려 내가 위로된다. ‘담수지교(淡水之交)’란 말이 있다. 맑은 물과 같은 만남이란 뜻이다.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선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상대방을 온전히 비춰줄 수 있으며 살려 줄 수 있다. 조금이라도 혼탁하면 가을과 같은 만남이 되지 않는다. 오묘한 진리의 작용은 호리도 틀림이 없다.

솔직히 그 작용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확신한다. 장병들과 함께 하는 시린 듯 고운 이 시간이 소중하다고. 그래서 두 손 모아 장병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나를 위로한다.

10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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