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행정학 박사/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행정학 박사/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 예전보다 편해졌는데 행복하지 않아요

30년 남짓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별 걱정 없이 은퇴생활을 즐겼다.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친구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시간이 없어 못했던 이런저런 일들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은퇴 초기의 들뜬 기분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해야겠다는 설렘도 없고 삶이 그냥 무덤덤해졌다. 여유가 있어서 좋긴 한데, 현직에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산 넘어 구름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도 행복은 저만치에 있다. 예전보다 편해졌는데 왜 더 행복하지 않을까? 모래시계처럼 빠져나가는 시간 때문일까? 누리고 가진 것 하나 하나 잃어가는 단계에 ‘노년의 행복’을 찾는 것 자체가 모순일까?

△ 행복을 위한 몸짓… 행복의 빈도를 높이고 기본수준을 끌어올려라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 진다는 것>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행복이 인생의 의무’라든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그의 강한 주장에 쉽게 공감할 수 없더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첫 직장을 잡았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 행복은 곧 일상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적응’이라 부른다. 은퇴도 마찬가지다. 초기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행복했던 기분은 서서히 줄어들어 마침내 일상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러니 행복한 시간을 늘리려면 행복한 사건의 빈도를 높여야 한다. 자주 행복 거리를 만들어 보자. 의미 있는 일, 재미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내서 즐겨라. 우리들 속에 숨어 있는 호기심,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같은 어린아이의 유전자를 끌어내면 도움이 된다. 매사에 별다른 관심도 없고 신기한 것도 없이 세상 다 산 것처럼 행동한다면 행복한 일이 생길 수 없다.

행복의 기본수준을 끌어올릴 방법은 없을까? 이를테면 특별한 사건 없이도 마음을 변화시켜 일상에서 행복의 느낌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티벳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마음의 수행’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마음 수행을 통해 삶의 자세와 시각,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고, 이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내면의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지내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반면에 내면이 고요하고 평화롭다면 행복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은퇴 후 노년에는 마음의 수행을 통해 미움이나 분노하는 마음을 덜어내고 사랑과 자비심에 넘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는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할 필요도 있다. 바램과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간절히 원하지만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 가급적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많이 가져서,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기대를 줄이거나 인생을 관조하는 마음가짐에서 행복이 올 수도 있다.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라는 ‘노인 4고(苦)’를 대처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규칙적인 운동, 안전한 경제생활, 건전한 대인관계, 보람 있는 일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인생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내 경우는 ‘놀고 쉬고 일하고’를 균형 있게 함으로써 노년의 ‘4고(苦)’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놀Go 쉬Go 일하Go – Go쟁이가 되자!’ 이것이 나의 인생 2막 모토다. 

삶의 모든 몸짓은 행복을 향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노년의 행복은 엄청난 쾌락이 아니라 심신의 안녕과 평온함이 이어지는 나날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