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정권 측이 다시 대북 친화 쇼 불씨 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한‧미연합훈련과 관련,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보고회의에서 한 말이니 훈련을 축소하거나 유예하라는 뜻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이에 앞서 북한 김여정은 지난 1일 “군사연습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위협했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바로 그 담화에 대한 대답이겠다. 그렇다면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말이 된다. 

김여정의 지시를 따르는 셈인가

이 정권의 국가안보관, 대북관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이려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연합훈련이 없는 동맹의 의미는 무엇인가. 훈련이 거추장스럽다면 군대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언제부터 문 대통령이 김여정의 말에 직접 즉각 반응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는지 그것도 한심하다.

최근의 남북관계 변화의 움직임은 지난달 27일 통신선 연결 발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청와대측은 지난 4월말 이래 문 대통령과 김정은 간 10차례에 가까운 친서교환이 있었다고 발표했었다. 그 덕에 통신선 연결이 가능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왜 북한은 그걸로 생색내고 우리는 감지덕지 반겨야 하는지 의아하다. 통일부는 바로 북한에 대한 물자 반출을 승인하겠다고 나섰다.  터무니없는 불균형 관계 아닌가.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기 이전(3일)에 이미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정보위에서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밑자락을 깔았다. 국정원장이 통일부 장관의 업무까지 겸한 모양새다. 이러니 통일부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닌가. 아니면 국정원을 없애든가.

박 원장은 “과거 6·15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 때부터 지난 20여 년간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해왔다”라는 말도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은 문제가 없는데 우리 측 연합훈련만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아연(啞然)해 진다. 북한이 인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에는 어떤 성의를 보였는지는 왜 말하지 않는가. 

늘 하는 말이지만 마리오네트(인형의 마리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조정하는 인형극)을 보는 기분이다. 물론 인형을 다루는 사람은 김여정이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 쪽의 멀쩡한 권세가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종전선언 결의안도 채택하기로

청와대 및 국정원 분위기가 이런데 구경만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아니지. 설훈‧진성준 의원 등의 주도로 연판장이 돌았는데 60여명의 의원들이 서명했다는 언론 보도다. 내용인즉슨 ‘8월말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조건부 연기’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흡사 잘 짜인 연극대본이다. 이 연판장을 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설 의원은 이미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교류 협력 재개에 시동이 걸렸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북한이 남북통신선을 연결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니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결국은 훈련을 아예 중지하자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측 요인들을 겨냥해 온갖 험한 말로 욕하고 비난하고 협박할 때 이들은 어디서 무얼 했을까? 그가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런 위협과 행패에 대한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없는데 통신선 연결된 것으로 화해와 협력의 계기가 마련됐다? 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민주당의 황당한 대북 자세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종전선언 결의안’을 이달 안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언론보도다. 북한이 통신선을 복구했으니 우리가 결의안을 채택할 명분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하는 모양이다. 종전선언은 종전협정을 이끌어내는 마중물 같은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면 미국인들 별 수 있겠느냐, 종전협정 체결을 미룰 수 없겠지.” 이런 계산일 게 분명하다. 

평화 상술에 대선 표심 움직일까

사실 종전선언만으로도 북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 된다. 그걸 빌미로 날마다 협정체결의 압박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꼬투리 하나 잡으면 집요하게 물로 늘어져 기어이 우리 측을 손들게 하는 것이 저들의 협상술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 친해지지 못해서 안달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종전선언 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문가지다.

‘종전’이 되면 유엔사령부는 여기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쟁이 끝났으니 주한미군도 떠나야 한다. 미군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 종전이 되고나면 그 명분이 사라져 버린다. 나아가 한‧미군사동맹도 폐기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 북한은 집요하게 소리 지르면서 이 모든 조치들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 여당은, 이렇게 하면 내년 대선의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인가? 자기들은 평화의 사도들이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광이라고 떠들 게 뻔하다. 정작 자신들이야말로 북한 군사력 증강과 남한 군사적 종속화 책동을 부추기고 있으면서 되레 경쟁정당이나 그 지지 세력에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그리고는 무모하고 코미디 같은 평화 놀이에 탐닉하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에는 그간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단 한 발짝이라도 북한이 평화 쪽으로 내디딘 적이 있다면 말해 보시라. 우리의 대응방식과 태도는 전혀 변수가 안 된다. 북한 체제의 자기 존속 의지만이 유일한 저들의 행동강령이다. 그것은 북한 내부의 문제다.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못 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도 저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문 대통령, 박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북한의 속성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친화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평화 상술’이 우리 국민의 표심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 치적 관리의 한 방안일 수도 있다. 혹 그런 생각이라면 이제라도 정신을 가다듬기를 바란다. 국민은 그대들의 마리오네트가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