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NH농협·BNK까지 회장 전원 교체
윤 대통령,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문
정치와 경제 권력 대립, "결국 정치권력의 완승"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사진=연합뉴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사진=연합뉴스

[ESG경제=김도산 기자]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정부와 기존 최고경영자(CEO) 간의 공방전에서 정부가 완승했다. 윤석열 정부 초기 임기가 끝난 금융지주회사들의 CEO 승계 문제와 관련해 정부 뜻대로 전원이 교체됐다. 정부는 일관되게 “셀프 연임 불가” 메시지를 분명히 냈고, 결국 그 의지를 관철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3일 내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을 시작으로 BNK금융에 이어 우리금융까지 CEO가 모두 물갈이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금융지주 CEO들이 자기편 사람들로 이사회를 꾸린 뒤, 임기를 3~4차례까지 이어가는 ‘셀프 연임’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이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와 방식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서는 "은행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관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대결...“정치가 완승”

선진국들의 기업 지배구조 역사를 봐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세(勢)대결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충돌의 결과물들이 모아져 지금의 기업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력은 국가 경제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일정 기간 경제권력의 상승세를 용인한다. 그러나 경제권력이 일정 선을 넘어 정치권력을 압박하는 상황에 이르면 즉각 개입해 그 힘을 약화시키는 패턴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정부의 행정개입과 규제, 법 제정 등의 수단이 동원된다. 1920~30년 대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JP모건을 필두로 카네기와 록펠러 등 경제권력이 미국의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좌우할 정도로 세력을 키우자,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금융 및 산업 규제에 이어 강력한 ‘반독점법’까지 만들어 재벌을 사실상 해체했다.

법이란 것이 결국 국민적 합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공권력 동원 수단이란 점에서 경제권력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국 자본주의는 대부분 대기업의 주식이 완전 분산된 가운데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을 끌고 가고, 한편으로 자본시장의 주주들이 독립적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주주자본주의’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한국ESG평가원의 손종원 대표는 “한국도 이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세 대결이 본격화하는 시대를 맞은 것 같다”고 평했다. 이어 “일단 금융지주사와 KT·포스코 등 소유 완전 분산 기업들부터 시작해 오너 지분이 적은 대기업들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확산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윤 정부 뜻대로 금융지주 회장 모두 물갈이

공교롭게도 금융지주회장 3연임 이상의 전통은 민주당 정부에서 비롯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 통폐합 과정에서 설립된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대부분 2연임 이내에서 임기를 마쳤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이 정부의 묵인 아래 3연임에 성공한 뒤 금융지주사 회장 3연임 전통이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때는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이 만 70세를 꽉 채워 4연임까지 자리를 지켰다.

윤 정부는 이런 관행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결국 그 뜻을 관철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직권남용’ 등 사법 리스크 때문에 재무 관료들이 몸을 사린 면이 있는 가운데, 이 정권 들어 검찰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총대를 메자 재무 관료 출신 금융위원장까지 힘을 보탰다.

금융지주사 회장 교체 신호탄은 신한금융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12월 8일 차기 회장 후보 대상의 최종 면접 자리에서 돌연 '용퇴' 의사를 밝혀 진옥동 당시 신한은행장이 회장으로 내정됐다. 물론 최종 결정은 회장추천위원회의 사외이사들의 몫이었지만, 교체 의견을 가졌던 사외이사들에게 정부 압박이 힘을 불어넣은 걸 부인할 수 없다고 금융권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며칠 뒤인 12일에는 NH농협금융이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하면서 손병환 당시 회장의 연임이 무산됐다. 뒤이어 BNK금융지주 회장에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선임됐다.

이후 금융권 관심은 우리금융에 집중됐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지만, 연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압박을 가했다. 이어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주인 없는 회사의 CEO 선임 절차는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결국 손 회장이 두손을 들면서 전직 관료 출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후임 회장으로 내정됐다.

대형 금융지주사 나머지 2곳 중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오는 11월 임기가 끝나고,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임기가 2년 가량 남아있다.

우리금융의 한 관계자는 “결국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한국에서도 입증된 셈”이라며 “손 회장이 신한금융지주처럼 스스로 물러났으면 내부 출신으로 무난히 CEO 승계가 이뤄졌을텐데, 욕심 부리다 관료 출신을 불러들인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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