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장백산 1호'문학지 발표
가을에 젖어
이렇게 맑은 하늘에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 속에
이렇게 풍성한 황금 빛 들녘 앞에서
말랐던 내 마음은
끝없이 젖어간다
무시로 차오르는 감성의 물빛에
채색 한 방울 튕겨 와도
온통 물 들어 그림이 되는…
바람이 불어온다
추억의 작은 옹알이 귓불을 스친다
봄빛에 피어나던 약속의 씨앗들
여름날에 얼마나 비등 했던가
끝없이 젖어오는 이 가슴에
작은 쪽배 하나 가만히 띄워
사색을 싣고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눈에 안겨오는 헐 벗는 가을나무
무성했던 집념들이 떨어져 나가네
2023 <장백산 1호>
봄 까치꽃
이른 봄 따뜻한 햇살 한줌
걸쳤던 잠바를 벗게 하는 오후
양지바른 길섶엔
보라색 쬐끄만 꽃잎이
마른 검불 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인다
무심한 내 눈길을 뺏어 갈 때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면
말없는 작은 얼굴에
내 큰 눈망울이 푹 빠진다.
간밤에 찬바람 새벽서리 내렸는데
작고 여린 네 얼굴은 끄떡없이 웃는 구나
오늘은 나도 너를
자세히 보자꾸나
오래오래 보자꾸나
2023년 <장백산 1호>
나의 창작노트
무시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의 이별소리에
휘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는
조용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한적한 공원의 한 모퉁이엔
소리 없는 벤치의 빈자리
스쳐간 사연들이 숨어서 침묵한다.
이 세상에 던져보는 아리송한 물음표들이
처마 밑 거미줄에 대롱거리면
옹달샘 모래알 같은 내 언어들이
묻혔던 사색에서 송알거린다
-미발표작-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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