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연합뉴스

‘유통기한’ 표시제가 드디어 ‘소비기한’ 표시제로 변경된다. 지난 7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2023년 1월부터 모든 식품에 소비기한을 표시해야 한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부패한 식품이 판매·섭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지표다. 유통기한은 ‘판매가 가능한 시점’을, 소비기한은 ‘품질이 떨어졌지만 소비자 건강에 지장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유통기한 표시제도가 실시된 것은 1990년 7월1일부터였다. 기존의 제조일자 및 권장유통기한 표시가 혼재돼 있던 것을 정부가 일원화했으며 지난 30여년동안 사용해왔다. 그러나 유통기한 표시제도는 식품제조업체가 판매가 가능한 시점을 지표로 삼았기에 품질에 문제가 없어도 반품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해동안 버려지는 음식이 약 1조원에 달했다.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두된 것은 2019년부터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국내 1일 음식물쓰레기가 1만 4314톤으로 나타났다. 이에 환경단체와 식품·위생 전문가들은 막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식품에 표기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방안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유통업체와 생산자단체 등이 반대해 도입되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5월30일 열린 ‘2021 서울 녹색 미래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난 6월17일 열린 소비자기후행동의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지난 6월17일 열린 소비자기후행동의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소비기한 표시제가 적용되면 개봉하지 않은 우유는 최대 50일이 지나도 먹을 수 있으며 치즈는 70일이 지나도 섭취가 가능하다. 건면은 50일, 냉동만두 25일, 식빵 20일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버려지는 음식이 줄어들 것은 명백하다.

식품업계에서는 대부분 소비기한 제도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유업계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낮은 출생률과 대체품들이 많은 시장 상황에서 우유의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게 되면 그만큼 구매량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식품안전사고 발생 시 안전사고의 책임은 제조사가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더욱 큰 우려는 수입유제품의 국내 유입이다. 그동안 비관세장벽 역할을 했던 유통기한 표시제가 폐지될 경우 수입 멸균유의 국내시장 침투가 강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에 정부는 우유에 한해서만 8년간의 유예기간을 둬 2031년 도입키로 했다. 8년 동안 유업계는 소비기한에 대비 유통환경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냉장·냉동 등 온도를 보존하는 콜드체인 시장의 활성화다. 콜드체인이란 신선식품부터 의약품까지 온도에 민감한 제품의 품질 및 안전을 위해 생산, 보관, 유통, 판매 전 과정을 저온으로 유지하는 저온 물류시스템이다. 소비기한은 식품의 수명이므로 보관온도와 보관시간의 준수가 중요하다. 냉장·냉동 보존온도를 벗어나면 소비기한 내에 식품이 상할 수가 있어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다. 이에 온도와 시간을 감시하는 객관적 시스템을 도입하고 콜드체인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소비기한 표시제가 성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인식 개선도 절실하다. 30여년동안 유통기한에 익숙했던 소비자는 소비기한 시행 초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헷갈릴 수 있다. 유예기간 동안 소비기한의 긍정적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