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고령 환자의 안전한 약물 사용을 위해 현재 복용 중인 약물이 여전히 필요한지 점검하는 '탈처방(deprescribing)' 기준을 국내 진료 현장에 제시했다.[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고령 환자의 안전한 약물 사용을 위해 현재 복용 중인 약물이 여전히 필요한지 점검하는 '탈처방(deprescribing)' 기준이 국내 진료 현장에 제시됐다.
단순히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 상태와 치료 목표 변화에 따라 약물의 이득과 위험을 다시 평가하는 새로운 약물관리 접근법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22일 고령 환자의 다약제 사용을 개선하기 위한 '고령 환자의 다약제 사용 예방을 위한 탈처방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의료진이 실제 진료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의사결정 흐름도와 환자 안내자료 등 실행도구를 함께 마련했다고 밝혔다.
"처방 감소 아닌 처방 재검토"…고령사회 약물관리 패러다임 변화
고령 환자는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관리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초 처방 당시에는 필요했던 약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질환 상태, 증상 변화, 치료 목표에 따라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장기간 약물 사용은 부작용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새로운 증상 발생으로 추가 약물이 처방되는 '처방 연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복용 중인 약물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성이 낮아진 약물은 의료진 판단 아래 감량하거나 중단을 검토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NECA가 마련한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임상적 판단을 지원하기 위한 자료다.
특정 약물을 일률적으로 줄이거나 처방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환자별 상황에 맞춰 약물 사용의 적정성을 평가하도록 돕는 임상 의사결정 지원자료라는 점이 핵심이다.
국내 임상현실 반영…6개 약제군 탈처방 권고 마련
NECA는 국내 고령 환자에서 사용 빈도가 높고 장기 복용 과정에서 안전 관리가 필요한 6개 약제군을 대상으로 탈처방 권고를 개발했다. 대상 약제군은 ▲전신스테로이드제 ▲양성자펌프억제제(PPI) ▲비스테로이드소염제(NSAIDs) ▲근이완제 ▲트라마돌 ▲메게스트롤 등이다.
연구진은 대한내과학회 중심의 다학제 개발그룹을 구성하고, 국제 표준 방법론인 GRADE-ADOLOPMENT를 활용해 기존 임상지침과 체계적 문헌고찰, 국내 진료 환경,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권고안에는 만성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장기간 사용 중인 전신스테로이드제, 증상 호전 이후에도 지속 복용하는 PPI, 염증과 통증이 개선된 이후에도 유지되는 NSAIDs 등은 환자 상태에 따라 감량 또는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단순 근육통·관절통 목적의 장기 근이완제, 비암성 만성 통증에서 사용하는 트라마돌, 암 또는 후천면역결핍증후군(AIDS) 같은 특정 질환이 없는 고령 환자의 메게스트롤 사용 등도 환자별 위험과 이득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다만 이번 권고는 최초 약물치료 선택을 위한 치료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약물 감량이나 중단 여부는 환자의 질환 상태와 증상 변화, 부작용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22일 고령 환자의 다약제 사용을 개선하기 위한 '고령 환자의 다약제 사용 예방을 위한 탈처방 가이드라인'을 개발, 의료 현장에 제시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지가 AI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진료현장 적용 위한 흐름도·환자 안내자료 개발
NECA는 가이드라인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실행도구도 함께 개발했다. 의료진용 자료에는 전신스테로이드제와 PPI에 대한 의사결정 흐름도가 포함됐다. 흐름도는 환자 상태 확인, 약물 지속 필요성 평가, 감량·중단 또는 대체 치료 검토, 이후 모니터링 등 진료 과정에서 필요한 판단 사항을 단계별로 제시했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리플렛, 환자 가이드, 인포그래픽도 마련됐다. 해당 자료에는 약물별 사용 목적과 장기 사용 시 주의해야 할 부작용, 감량·중단을 고려하는 이유, 이후 확인해야 할 증상 등이 담겼다. 특히 약물을 환자가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되며, 현재 복용 중인 약이 계속 필요한지 의료진과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고령사회 앞둔 약물안전 관리체계 구축 과제 제시
이번 연구는 단순한 약물 감소가 아닌, 환자 중심의 지속적인 약물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NECA는 "고령 환자의 다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환자의 위험 인식 개선, 진료 현장에서의 포괄적 약물검토 지원, 처방정보 연계 및 관리체계 고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포괄적 약물검토 시행률, 잠재적 부적절 약제 사용률 등 성과지표를 활용해 약물안전 관리 수준을 지속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공동 연구책임자인 NECA 박동아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고령 환자의 약을 일률적으로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표에 따라 약물 사용의 이득과 위해를 점검하도록 돕는 임상 의사결정 지원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결정 흐름도와 환자 안내자료가 의료진과 환자·보호자의 상담 과정에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동 연구책임자인 건국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문지용 교수도 "탈처방은 약을 갑자기 끊는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확인하며 필요 시 단계적으로 감량하거나 중단을 검토하는 과정"이라며 "고령사회 약물안전 관리체계 구축 논의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