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전 세계 정부가 오남용 위험으로 강력히 통제해 온 환각제 성분이, 중증 우울장애 치료에 있어서는 도리어 뇌 회로를 재구성하는 긍정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신체적 기능 저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지만, 적시에 치료받지 못하면,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주며 생명까지 위협하는 질병이기도 하다.
현재 우울장애는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의 항우울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착화된 부정적 사고 회로, 기존 항우울제로는 한계
그러나 중증으로 발전할 경우 환자는 기존 항우울제를 복용하더라도 체감적인 치료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는 환자들에게 단순히 세로토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고 회로 자체가 물리적으로 고착된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증에서 중등도의 우울장애는 세로토닌의 결핍으로 발생하지만, 중증의 경우 세로토닌 수용 메커니즘 자체가 완전히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체내 세로토닌 양이 증가하더라도 뇌가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이미 굳어진 부정적 사고 패턴과 결핍 상태의 경로를 지속적으로 따르게 된다. 뇌의 기능은 단순한 신경전달물질의 양적 변화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기전을 토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UCSF)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연구진은 최근 환각제 복용이 이러한 고착화된 패턴을 타파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독특한 연구 결과를 발표, 관심을 끈다.
'실로시빈' 계열 환각제, 뇌 신경망 물리적 재구성 확인
연구팀은 1950~60년대부터 알코올 중독자나 말기 암 환자들이 환각제 오남용 경험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거나 중독을 해결했다는 다수의 보고에 주목하고 이것이 단순 플라시보 효과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28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실로시빈(Psilocybin)' 계열 환각제와 위약을 투여한 뒤, 뇌파(EE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확산텐서영상(DTI) 등의 검사를 통해 뇌의 물리적 구조를 측정했다.
그 결과, '실로시빈' 복용 한 달 뒤, 시험 참여자들의 전두엽과 하부 피질을 잇는 신경 경로가 더욱 촘촘해지고 무결성이 향상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뇌의 연결성이 물리적으로 강화되었음을 의미다.
이 기전을 중증 우울장애 치료에 적용할 경우, 뇌의 물리적 연결망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간 우울 증상을 겪으며 저하된 뇌의 연결성은 신경전달물질이 회복된 후에도 고착화되어 스스로 복구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실로시빈'은 뇌의 무질서를 일시적으로 높여 고착화된 기존 패턴을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뇌는 유연성을 회복하고, 부정적인 회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경망 연결을 형성할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환각제를 통해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뇌의 물리적 변화가 우울장애 치료 효과 사이를 연결하는 결정적 고리"라며 "이를 통해 환자의 우울장애 개선 척도를 측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5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최초 실로시빈 투여에 따른 인간의 뇌 변화에 관한 연구(Human brain changes after first psilocybin use)'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