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마카리(Marty Makary) FDA 국장[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절차가 빨라졌다. 최근 발표된 2027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확인되듯 '신속 IND' 도입과 '바이오시밀러 규제' 철폐 등 표면적인 문턱은 낮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이를 곧 승인 난이도의 하락으로 해석하면 오산이다. 도리어 준비되지 않은 기업이 더 빠르게 걸러지는 '속전속결형 퇴출'이 더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FDA 승인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임상 데이터를 통해 효능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조 공정의 완결성과 데이터 해석의 정교함, 규제 대응의 기민함까지 완벽히 갖춰야 한다. mOS(전체 생존기간 중앙값) 23.8개월이라는 압도적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두 차례나 보완요구서한(CRL, Complete Response Letter)을 받은 HLB의 간암 1차 치료제 '리보세라닙(Rivoceranib)' 병용요법이 그 단적인 예다. 승인에 도전하는 한올바이오파마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토클리맙(Batoclimab)'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FDA 국장은 4월 1일 FDA 본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직원 대상 연설에서 지난 1년간 진행된 'AI 심사' 도입, '단일 임상시험 원칙' 도입, '우선심사 바우처 프로그램' 신설 등 심사 속도를 끌어올린 자신의 성과를 열거하면서도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혁신하고,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표면적으로는 규제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카리 국장이 강조하는 '속도전'과 '간소화'는 대충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 정교한 현미경으로 깊이 들여다보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심사 진행이 빨라진 만큼 검증도 꼼꼼해 졌다. 시장은 이미 그 사실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 "레드 테이프 제거" 이후 더 치밀해진 가속 심사
이런 기조는 마카리 국장이 취임 전부터 견지해 온 철학이다. 그는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외과 종양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과잉 치료와 FDA의 관료주의적 비효율을 지적하며 불필요한 규제(Red Tape)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FDA가 정치와 관료주의에 갇혀 과학적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FDA는 인공지능(AI) 심사 도입과 실사용근거(RWE) 활용 확대 등 효율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 규제 완화처럼 보이지만, 승인 현장의 기류는 정반대다. 최근 예상 밖의 CRL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는 효능 부족 때문이 아니다. 임상 설계의 논리적 개연성과 제조 공정(CMC)의 미세한 완결성 등 이전에는 간과하기 쉬웠던 디테일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 DL 줄고, CRL은 늘고…"기다려주지 않는 FDA"
과거의 FDA는 심사 중 결함이 발견되면 결함 통지서(DL, Deficiency Letter)를 발송해 기업에 수정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중간 점검이자 보완 창구였다. 하지만 마카리식 속도전 하에서는 DL 발송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심사관들이 정해진 타임라인을 지키기 위해 미세한 결함에도 즉각 최종 결과인 CRL을 발송해 심사를 종결짓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강화된 심사관 평가 지표가 있다. 마카리 체제 하에서 FDA 심사관들은 얼마나 많은 보완 기회를 부여했는가보다 처방약 이용자 수수료법(PDUFA, 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에 따른 법정 심사 기한 내에 심사를 종결했는가로 평가받는다. 발견된 결함을 근거로 즉시 CRL을 발행해 심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일정 관리 리스크를 줄이는 선택이 된 셈이다.
지난 2월 희귀 혈액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디스크 메디신(Disc Medicine)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FDA는 심사 막바지에 데이터의 질적 서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자마자 추가 설명 요구 없이 곧바로 CRL을 발송했다. 일단 CRL을 받으면 재신청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되기에, 자금력이 약한 중소 바이오사에게 CRL은 사실상 불합격 통지서나 다름없다. 이는 곧 생존의 위기로 직결된다.
■ 디테일 미비가 파산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현실
실제로 준비되지 않은 기업이 퇴출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암 백신 분야의 유망주였던 IO 바이오텍(IO Biotech)과 리펠라 제약(Lipella Pharmaceuticals)은 압도적인 데이터를 자신하며 속도전에 승부수를 던졌으나, 제조 완결성과 데이터 해석 미비를 지적받으며 지난 3월 31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키저 라이프 사이언스(Kezar Life Sciences) 역시 임상 중 발생한 안전성 문제에 대해 FDA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모니터링 조건을 내걸자 자생력을 잃고 지난 3월 30일 오리니아(Aurinia)에 헐값에 매각됐다. 규제 혁신이라는 FDA의 약속이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 데이터 그 이상, '임상적 상식'을 묻는 FDA
마카리 체제의 FDA는 단순한 수치뿐 아니라 그 수치가 약물을 통해 환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임상적 상식(Clinical Common Sense)'을 강조한다. 데이터 확보는 출발점일 뿐이며, 그 데이터를 토대로 이 약이 왜 필연적인지에 대한 서사를 완성하지 못하면 심사관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 흐름은 국내 기업들도 피해갈 수 없다. HLB는 '리보세라닙' 병용요법으로 이미 두 차례 CRL을 받았다. 세 번째 도전에서는 데이터 완결성은 물론 제조 공정과 검증의 마지막 1%까지 채워야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한올바이오파마의 '바토클리맙' 역시 효능 수치를 넘어 환자의 삶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는지 설득하는 서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FDA 문턱을 넘으려는 기업은 마지막 1%의 디테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 미국 시장이 신약개발 기업에 요구하는 새로운 생존 문법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