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만성질환 치료 현장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단일제 병용요법의 시대가 저물고, 여러 성분을 한 알에 담은 복합제가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용 편의성을 넘어, 임상적 유효성과 경제적 가치를 입증한 결과다. 헬스코리아뉴스는 3편의 기획 기사를 통해 우리 제약사들이 일궈낸 임상 성과와 시장의 변화를 토대로 만성질환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上] 초기 치료부터 '복합제' 한 알 … 만성질환 '골든타임' 잡는 핵심 동력
대한민국 만성질환 치료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때 약물을 하나씩 추가하던 단계적 치료 방식은 이제 조금씩 뒤안길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여러 성분을 하나로 합친 '고정용량 복합제'가 채워가는 모양새다. [사진=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대한민국 만성질환 치료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때 약물을 하나씩 추가하던 단계적 치료 방식은 이제 조금씩 뒤안길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여러 성분을 하나로 합친 '고정용량 복합제'가 채워가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은 2차 이후 치료뿐 아니라 초기 치료 시에도 단일제보다 복합제를 복용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는 국내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의 처방 트렌드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최근 공개한 3제 고혈압 복합제 '아모잘탄플러스'의 3상 임상시험 결과는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HM-APOLLO 301(2022년 5월~2023년 6월)과 302(2024년 3월~12월) 등 2단계로 나눠 진행한 해당 임상시험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초저용량 아모잘탄플러스(암로디핀 1.67mg, 로사르탄 16.67mg, 클로르탈리돈 4.17mg)는 암로디핀 5mg 단일제 대비 비열등성을, 로사르탄 50mg 단일제 대비 우월성을 각각 입증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고혈압 약물을 고용량으로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우려를 초저용량 조합을 통해 획기적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실제 임상 과정에서 초저용량 아모잘탄플러스 투여군의 부작용 발생률은 단일제 투여군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게 나타났으며, 심각한 약물 관련 이상 반응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유한양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고혈압 3제 복합제 '트루셋'의 3상 임상시험 결과도 단일제에서 복합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뒷받침한다. 텔미사르탄 20mg, 암로디핀 2.5mg, 클로르탈리돈 6.25mg을 조합한 저용량으로 트루셋 투여군은 8주 후 수축기 혈압이 평균 19.43mmHg 감소했다. 이는 텔미사르탄 40mg 단일제 투여군의 감소 폭인 15.65mmHg를 유의미하게 웃도는 결과다. 목표 혈압 도달률도 68.87%를 기록하며 대조군(53.55%)보다 월등히 높은 성적을 거뒀다. 이상반응 발생률은 단일제와 큰 차이가 없었다.
글로벌 가이드라인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했다. 유럽심장학회(ESC)는 2024년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대부분의 환자에게 치료 시작 단계부터 두 가지 성분을 합친 '단일 제형 복합제(SPC)' 사용을 우선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가장 높은 'Class I' 등급의 권고로, 사실상 복합제 처방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규정했다.
복합제의 효과와 안전성뿐 아니라 뛰어난 복약 순응도 또한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의 처방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만성질환 환자가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 그 수가 늘어날수록 약을 거르는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실제 약제가 1개 추가되면 복약 순응도는 10% 이상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합제는 이러한 환자들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장기적인 치료 이행률을 높이는 핵심 동력으로 평가된다.
경제적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단일제를 각각 처방받는 것보다 복합제 하나를 처방받는 것이 약값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한미약품의 분석에 따르면 고혈압·이상지질혈증 치료 4제 복합제인 '아모잘탄엑스큐' 사용 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약가는 단일제 개별 처방 대비 최대 27%까지 저렴해진다. 이는 고정 소득이 적은 고령 환자가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유인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정해진 용량 조합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복합제가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이에 제약사들은 미세 용량 조절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용량 라인업을 출시하며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복합제들은 3~4가지 이상의 용량 옵션을 제공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단순함이 복잡함을 이긴다'는 격언은 만성질환 치료 현장에서도 유효하다. 과거 환자의 인내심에 의존했던 다제 복용의 시대가 저물고 복합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증명해 낸 강력한 임상 데이터는 이미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