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비만을 단순히 체질량지수(BMI)로만 구분하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이 대규모 유전 연구로 확인됐다.
비만은 오랫동안 심혈관질환, 당뇨병, 고혈압 같은 대사질환의 대표적 위험 요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BMI가 높아도 혈당·혈압·콜레스테롤이 정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 체중인데도 대사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기존의 BMI 기준만으로는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아이칸의대, 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 하버드의대/매사추세츠종합병원, 덴마크 코펜하겐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참여한 45만여 명의 유전자와 건강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체질량지수, 체지방률, 허리-엉덩이 비율 등 비만 지표와 혈당, HbA1c(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혈압 같은 대사 지표를 함께 고려해 새로운 분석 틀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약 205개 유전자 위치에서 유전 변이 266개를 발견했고, 이 변이를 합쳐 유전 점수(GRS_uncoupling)를 계산했다. 그 결과 점수가 높을수록 체지방은 늘었지만,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은 오히려 건강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점수 계산뿐 아니라, 이 같은 변이의 특징을 분석해 유전 아형을 8가지로 나눴다. △체지방은 늘지만 중성지방은 낮고 HDL은 높으며 LDL·총콜레스테롤과 당화혈색소(HbA1c)는 오히려 증가하는 아형 △지방 분포(허리–엉덩이비·WHR)에 영향을 주면서 혈압은 낮은 아형 △전반적인 체지방이 늘면서 수축기·이완기 혈압이 모두 낮아지는 아형 △체중은 늘지만 지질과 당 대사가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가장 두드러진 '건강한' 아형 △체지방 증가와 함께 혈당·HbA1c가 낮아 주로 당 대사에서 보호 효과를 보이는 아형 △체격·체지방이 크게 늘고 LDL·총콜레스테롤은 낮지만 중성지방은 높고 HDL은 낮으며 혈압과 HbA1c가 높아 전반적으로 불리한 아형 △중성지방·HbA1c·혈압은 낮고 HDL은 높아 여러 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아형 △체지방은 늘지만 중성지방은 낮고 HDL은 높으며 HbA1c와 혈압도 낮아 전반적으로 대사 건강이 유지되는 아형이었다. 이처럼 같은 비만이라도 어떤 아형은 혈압 조절에, 또 어떤 아형은 혈당이나 지질 대사에 이점을 보였다. 비만이 단일한 질환이 아니라 여러 생물학 경로가 얽힌 현상임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LDL은 혈관 벽에 쌓여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을 말한다. HDL은 혈관 속 찌꺼기를 치워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 콜레스테롤로,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져 있다.
혈액 단백질 분석도 흥미로운 결과를 더했다.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염증을 줄이는 아디포넥틴(ADIPOQ), 지단백질 리파아제(Lipoprotein Lipase) 같은 단백질은 '건강한 비만 아형'에서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일반적 비만에서는 이러한 보호 단백질과 유의한 연관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비만을 단순히 체중이나 BMI 숫자로만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방이 어디에 쌓이고, 어떤 유전자와 단백질 신호가 작동하는지에 따라 같은 비만이라도 전혀 다른 건강 궤적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유전 점수는 비만 환자들의 조기 위험 분류를 가능하게 하여 시기적절하고 개인에 맞춘 예방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는 한계도 있었다. 데이터가 대부분 유럽계 인구에서 나온 것이어서 다른 인종과 민족 집단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혈액 단백체 분석에서는 약 2920개 단백질만을 측정해, 그 외 중요한 단서가 빠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Genetic subtyping of obesity reveals biological insights into the uncoupling of adiposity from its cardiometabolic comorbidities'라는 제목으로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