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우리 제약산업이 사상 처음으로 의약품 수출 100억 달러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바이오헬스 전체 수출도 279억 달러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국가 경제의 핵심 버팀목임을 증명했다. 정부는 K-바이오의 글로벌 약진을 치하하며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안마당인 국내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하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제네릭 약가 제도 개편안이 제약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K-바이오'의 뿌리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까지 대폭 깎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업계가 느끼는 충격은 '고사(枯死)' 수준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제네릭 수익을 신약 개발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재투자하며 버텨왔다. 이 최소한의 캐시카우가 한순간에 증발한다면,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R&D 엔진은 꺼질 수밖에 없다.
제약업계가 제시한 산정률 48%는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호소다. 5.55%p의 인하를 감내하겠다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은 뼈를 깎는 고통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40%라는 수치를 강행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수익성이 낮은 국가 필수 의약품이나 퇴장방지의약품의 생산 포기가 속출하고, 이는 곧 환자들의 약권 침해와 보건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것이다. 인력 구조조정과 자국 생산 기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도 피하기 어렵다.
무리한 약가 인하가 가져온 비극은 이미 해외 사례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복지부가 모델로 삼은 일본과 프랑스의 현실을 보라. 제네릭 약가를 파격적으로 낮춘 일본은 전체 품목의 23%가 공급 부족 사태를 맞았고, 프랑스 역시 신규 제네릭의 자국 내 생산 비중이 15%까지 급락하며 의약품 주권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정부가 이런 실패 사례를 눈앞에 두고도 똑같은 길을 가려 하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깝다.
더 큰 모순은 이번 개편안이 정부가 강조해 온 '혁신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나 혁신형 제약사 인증 같은 일차원적 방식으로는 진짜 혁신 기업을 가려낼 수 없다. 품질 관리 선진화와 고용창출에 매진해 온 견실한 기업이, 실체 없는 페이퍼 컴퍼니와 동일한 잣대로 약가 인하의 칼날을 맞는다면 어느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혁신에 도전하겠는가.
정부는 제약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밖에서는 축배를 들게 하고 안에서는 독배를 건네는 지금의 이중적인 태도로는 결코 '바이오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정부의 규제가 만든 성과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도 R&D 투자를 멈추지 않은 기업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 만든 결실이다. 뿌리가 썩어가는 나무에서 화려한 꽃은 피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이달 중 열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정부는 업계의 마지노선인 48% 산정률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시행 시기를 1년 늦추는 미봉책은 해법이 아니다. 정책의 방향 자체를 '획일적 인하'에서 '혁신 가치 우대'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K-제약의 미래를 꺾을 것인지, 진정한 글로벌 강국으로 밀어줄 것인지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